피로한 시대의 ‘정신 회복 공장’은 밤에 가동된다!

권영미 교수(가천대학교 의료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권영미 교수(가천대학교 의료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오늘날 현대인은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라는 단어 속에 살아간다. 직장에서는 성과 압박, 가정에서는 관계의 갈등, 사회에서는 불확실성의 불안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스트레스 연구의 창시자, 한스 셀리(Hans Selye)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트레스는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스트레스는 삶의 향신료이기도 하다.”

그는 스트레스를 무조건 피해야 할 부정적 자극이 아니라, 인간의 성장과 활력을 자극하는 이중적 에너지로 보았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다루는 능력’을 잃었을 때다.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삶의 향신료가 되지만, 지속적이고 누적된 스트레스는 결국 독이 되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이때, 수많은 심리치료법과 명상, 운동법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회복의 출발점은 하나의 단순한 행위에서 시작된다. 바로‘숙면(熟眠)’이다. 숙면은 단순히 피로를 푸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낮 동안 쌓아올린 스트레스의 잔해를 정리하고 감정적 균형을 회복하며, 생리적 긴장을 풀어주는 자연이 설계한 복구 시스템이다. 현대의 뇌과학은 이 사실을 점점 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수면 중, 스트레스 호르몬은 내려가고 마음의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 몸은 ‘비상 모드’로 전환된다. 이때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HPA축(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이다. 이 축이 활성화되면,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심박수를 높이고 에너지를 비상 공급하는 대신, 몸의 회복 기능을 억제한다. 문제는 현대인의 HPA축이 거의 하루 종일 켜져 있다는 점이다. 경쟁, 불확실성 등, 이 모든 것이 뇌를 ‘긴장 유지’ 상태로 만든다.

그러나 깊은 숙면, 특히 NREM 3단계(깊은 서파수면)에 진입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 코르티솔의 분비는 억제되고 심박수와 혈압이 떨어지며, 교감신경의 긴장이 해소된다. 즉, 뇌는 낮 동안 밟아온 ‘가속 페달’을 놓고, 밤에 비로소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의대의 연구에 따르면, 숙면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37% 높게 유지된다고 한다. 이는 단지 피로가 누적되는 수준이 아니라, 항상 긴장된 뇌가 스트레스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상태로 굳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숙면은 감정 조절 회로를 회복시킨다 : 이성의 전두엽과 감정의 편도체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감정 통제력의 붕괴다. 수면이 부족하면, 전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고 편도체가 과활성화된다. 쉽게 말해, 이성의 브레이크가 약해지고 감정의 가속기가 밟히는 셈이다. 그래서, 잠이 부족한 날에는 평소보다 짜증이 더 나고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UC버클리 대학교의 매슈 워커(Matthew Walker) 교수는 이를 “수면 부족은 뇌의 감정 회로를 단선시킨다”고 표현했다. 숙면을 취하면 전전두엽이 다시 활성화되어, 감정의 폭발을 제어할 힘이 생긴다. 즉, 숙면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휘둘리지 않는 뇌로 재설정하는 과정이다.

꿈꾸는 동안 감정은 정리되고 기억은 재편된다
수면의 두 번째 단계인 REM 수면(꿈을 꾸는 단계)에서는, 그날 있었던 감정적 사건들이 뇌에서 재생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기억 저장이 아니라, 감정의 ‘정리’다. 예를 들어, 낮에 상사에게 혼나서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면, REM 수면 중 그 기억은 다시 불러와지지만, 그때의 감정 강도는 희석된다.

즉, 우리는 수면 중에 ‘감정은 남기지 않고 경험만 남기는 정리 작업’을 수행한다. 이것이 바로 숙면이 ‘감정의 해독제’라고 불리는 이유다. 반면 수면이 부족하면, 이 정리 과정이 중단되어 부정적인 감정이 다음 날까지 이어지고 스트레스가 누적된다. 숙면을 통해 인간은 하루의 감정적 찌꺼기를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신체적 스트레스도 수면 중에 복구된다
스트레스는 정신뿐 아니라 몸에도 흔적을 남긴다. 심박수 증가, 혈압 상승, 면역력 저하, 근육 긴장 등은 모두 스트레스의 물리적 표현이다. 숙면은 이 모든 생리적 반응을 되돌리는 종합 정비 시간이다. 깊은 수면 중에는 성장호르몬이 분비되어 세포 재생을 촉진하고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킨다. 또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심장 박동과 혈압을 안정화시킨다.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몸은 다시 균형을 되찾고 스트레스 내성이 강화된다. 결국, 숙면은 심리적 안정과 생리적 회복을 하나로 엮는 통합적 복원 메커니즘이다.

스트레스 관리의 출발점은 ‘잠’이다
오늘날 우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수많은 도구를 찾는다. 명상, 요가, 여행, 상담, 심지어 약물까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숙면이 전제되지 않으면 근본적 효과를 내지 못한다. 수면 부족 상태의 뇌는 아무리 명상을 해도 불안정하고, 아무리 운동을 해도 회복이 더디다. 결국, 스트레스 관리의 진정한 핵심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밤마다 뇌를 재부팅하는 단순한 자연의 리듬에 복귀하는 것이다. 숙면은 의식적인 훈련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자기 회복의 본능이다.

숙면은 ‘현대인의 생존 전략’이다
AI가 일자리를 바꾸고 시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불안한 시대, 우리의 경쟁력은 단순한 정보나 스펙이 아니라 ‘정신적 회복력’에 달려 있다. 그 회복력의 원천이 바로 숙면이다. 잘 자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강하고 위기에서 다시 일어나며,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높다. 숙면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뇌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자신을 정비하고 내일의 자신을 준비한다. 따라서, “하루를 잘 살기 위해선, 먼저 잘 자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과학이 증명한 스트레스 시대의 가장 현실적인 처방이다.

스트레스를 ‘잊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는’ 힘을 만드는 시간
숙면은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무마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의 혼란을 정리하고 감정의 균형을 맞추며, 스트레스에 강한 신경망을 다시 구축하는 뇌의 재생 공정이다. 우리는 모두 낮에는 파손되고 밤에는 복구된다. 그리고 그 복구의 질이 바로 내일의 마음과 정신을 결정한다. 스트레스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숙면은 ‘휴식’이 아니라 ‘재건’이다. 잘 자는 사람은 단순히 피로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삶의 폭풍 속에서도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다.

권영미(現 가천대학교 의료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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