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중앙뉴스= 최봄샘 기자]
껌
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 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직히고 무수히 직힌 이빨 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 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짓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우주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 못해 놓아준 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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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이 시절이...
국가적으로도 시련일수도 있으며 국민들도 살기 어려워지지 않을지 오지랖이 부글거리니 껌이라도 질겅거려본다. 나이탓이려나? 옛날처럼 딱딱 소리 내는 법도 잊어버렸고 그냥 질겅질겅 단물만 빨아 먹는 수준이라니. 그러고 보니 껌도 힘이 있어야 씹어지는 거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래 전의 김기택 시인의 시 껌을 묵상한다.
씹다 버린 껌 한 점이 이토록 깊은 울림이 될 줄이야.
흐물흐물하고 말랑말랑한 작디 작은 덩어리가 나를 살라하며 투지를 불어 넣는다.
김기택 시를 한 동안 탐닉했던 시절의 내가 그리워서인지 자꾸 맴맴 도는 마지막 행,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 못해 놓아준 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