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ID 보다 더 중요한 ‘신뢰’
CVID 보다 더 중요한 ‘신뢰’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8.06.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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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에서 진짜 얻은 것은 신뢰, CVID가 안 들어갔다고 실패인가, 북미 협상 역사에서 보여온 순서를 뒤바꾼 것, 북한이 처한 현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CVID(완전하고 검증하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가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 성명서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장이 들어갔다. 지겹게 들었던 CVID 중 CD만 들어갔기 때문에 미국 민주당과 우리나라 보수 정당의 비판적인 입장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연두 정상이 서명한 공동 성명서에는 CVID란 문구가 없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12일 논평을 내고 “미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서명한 전문 내용에는 CVID가 들어있지 않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 스케줄이 빠져있어 유감스럽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말했고 주한 미군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한국당은 이 상황이 대한민국의 안보 불확실성을 높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70년 간 북미 관계를 살펴보고 현재 북한이 처한 현실을 엄밀히 분석해본다면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7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현재 진행형인 북미 접촉을 두고 “세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며 △북한이 근본적으로 노선을 바꿨다고 보기 때문에 CVID 가능 △현재 북미 협상도 결국 세 번째 사기극(제네바 합의와 9.19 공동성명 때처럼) △중간 입장(북한 변화를 인정하고 CVID와 같은 핵 불능화 조치와 그 절차를 준수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전망)을 설명했다.

유 작가는 북미의 신뢰 관계와, 또 우리가 그 신뢰를 믿어야 하는 배경을 강조했다. (캡처사진=jtbc)

같이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그 중간 입장으로 되면 안 된다고 본다. 반쯤 신뢰하는 관계로는 잘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고 박 교수는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에서 완벽히 신뢰하는 관계로 갑자기 바뀔 수는 없다. 북한은 자신이 원하는 제재를 해제하고 미국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없애는 실익을 얻고 경제적 부담은 한국이 몰빵당하는 이런 구조가 될 수도 있다. 균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응수했다.

둘 다 핵심은 북미 간의 ‘신뢰’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 가진 <ABC>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정말 신뢰한다”고 말했다.

서명식 직후 <abc>와 인터뷰를 한 트럼프 대통령.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수 차례 신뢰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캡처사진=abc)

70년 간 서로를 믿지 못 했던 북미의 관계가 전면적으로 변화했음을 직접 표현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옳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비핵화 준비를 위한 뼈대를 갖췄다. 김 위원장은 모든 곳을 비핵화 할 것이다. 이제 바로 시작할 것”이라며 “수많은 사람들과 협상을 했는데 가장 믿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가장 고결한 사람임이 드러날 때가 있다. 김 위원장이 과거 미국에 실망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이제 과거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전임자들은 여기까지 온 적이 없다. 또한 김 위원장의 아버지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적대적으로만 지내왔던 북미가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하고 있는데 두 정상의 신뢰 구축은 CVID의 직접적 표현 이상을 의미하는 성과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그런 기초적 신뢰를 얻어갔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13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그 의심과 의심들이 만나서 신뢰로 바뀌었다는 것 이게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뢰의 증거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정상회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거래의 기술이란 책을 썼고 그 전에 방송 프로그램 사회도 했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출연자가 됐든 부동산 거래의 대상이 됐든 말을 몇 마디 건네 보면 이게 진심이구나 아니면 가식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을) 만날 때 표정을 보니까 그동안 악마화가 되어 있었고 깡패 국가라고 하고 악의 축이라고 딱지 붙여 놨던 게 잘못됐구나 하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아주 진지한 대화가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단독회담) 35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 끌 것 없다. 바로 확대회담으로 넘어가서 합의문 결론을 내자. 이렇게 결정했다”고 관측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이번 성명을 통해 그동안의 합의 순서를 바꿨다고 강조했다. (캡처사진=tbs)
정 전 장관은 미국이 이번 성명을 통해 그동안의 합의 순서를 바꿨다고 강조했다. (캡처사진=tbs)

정 전 장관은 그동안 북미 협상의 프로토콜(국가간의 교류를 원활하게 하는 외교상의 의례나 국가간의 약속을 정한 의정서)에 대해서 “첫째 미국이 북한을 의심하고 처음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그랬고 둘째 꼭 먼저 북한의 선 행동을 요구하고 그걸 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려고 하고. 이러니까 (미국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생각을 북한은 한 것이다. 그러니까 바꿔 얘기해서 북한도 미국에 대해서 의심을 많이 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전에는 합의문에 비핵화, 북미관계 개선, 평화체제 이런 순서로 대개 접근을 했다. 제네바 기본합의도 그렇고 9.19 공동성명도 순서가 그렇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꾸로 뒤집어 놨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는 문제 해결을 시작할 수 없다”는 인식을 했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적대 관계에 있던 북미 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발전시킨다고 할 때는 관계 정상화를 얘기하는 것이고 관계 정상화는 신뢰를 쌓아 나간다는 얘기”라며 “신뢰를 쌓아 나가려면 북핵 문제 발생 원인인 소위 군사적 대결 상태와 미국의 대북 군사적 압박 이걸 해소시켜 주지 않으면 북핵 문제는 해결 안 된다. 그 순서에 대한 미국 측의 이해가 공동 성명서에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의 분석틀을 토대로 싱가폴 공동 성명서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①양국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 
②양국은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③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고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④양국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 포로와 실종자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고 수습을 약속한다.

기존 관례대로 라면 ③ → ① → ②로 가야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수립해서 신뢰를 쌓은 뒤 그 다음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 비핵화를 달성하자는 순서다. 자주 쓰였던 표현으로 출구에서 기대할 CVID를 입구부터 찾았기 때문에 그동안 북미 접촉이 다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실질적인 협상이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사고 전환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중간선거(상하 양원의원 선거)와 위태로운 정치적 입지가 자리잡고 있지만 북한 역시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있다. 

(캡처사진=jtbc)
북미 협상 자체가 북한에 불리한 게임이라는 유 작가의 주장. (캡처사진=jtbc)

유 작가는 “한국 전쟁은 재래식 무기로 싸웠다. 중국 군대는 다 철수했다. 미군은 철수 안 했다.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바로 개입할 수 있지만 미국은 태평양 건너에 있기 때문에 남북 간 불신이 있는 조건에서 미군이 다 나가면 불리하다. 그래서 한미동맹을 맺어서 주둔을 계속했다. 유엔사도 남아있고 정전협정 상태니까. 반대로 핵무기는 어떤 상황이냐면 북한이 핵무기를 숨겨놓고 다시 개발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미국의 핵 자산은 이틀이면 들어온다. 그래서 북미 약속이 깨질 경우 북한 쪽이 훨씬 불리하다. 김 위원장이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서 믿자는 게 아니라 이 게임의 성격 자체가 북한이 속이면 불리한 게임이라는 것”이라고 우리가 북한의 행동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를 논증했다.

박 위원은 중국의 제재 동참이 북한의 변화에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캡처사진=jtbc)
박 위원은 중국의 제재 동참이 북한의 변화에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캡처사진=jtbc)

비슷한 맥락으로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12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 판은 김정은의 생각이 바뀐 게 결정적이었다. 작년 말에 이제 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총 30년 집권 플랜을 생각해봤을 때 이제 나가야 할 때다. 더 이상 이 안에서는 해결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 계기는 작년 10월 노동당 2차 7기 전원회의에서 중국의 대북 제재 결정이 큰 영향을 미쳤고 그 시기 한국이 손을 내밀었다. 한국의 정보라인이 긴급하게 만나면서 서울 평양 라인이 구축됐다. 결정적인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이 돌아서는 것 아닌가에 대한 위기감이 컸다”고 분석했다.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에서 근거없이 선의에 기반해서 신뢰를 구축하려는 게 아니라 남북미 각각 그럴만한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설명이다.

서로 화기애애한 인간 관계를 형성한 두 정상.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엄지척을 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서로 화기애애한 인간 관계를 형성한 두 정상.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엄지척을 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한편, 나경원 한국당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북미 공동 성명에 대해 “안보 비용 청구서만 얻은 나쁜 합의”라고 규정했고 “안보 억지력 약화라는 최악의 카드”라고 평가절하했다.

이어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은 결국 핵 보유국으로 대한민국 안보는 중대 위기로 접어들 수 있는 이번 결과를 두고 위대한 승리라고 찬사를 보내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라며 “우리 안보는 안중에도 없이 각자 원하던 것을 얻어낸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모습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CVID가 아닌 CD만 명시된 공동 성명서에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 발언까지 봤을 때 한국에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혹평한 것이다. 하지만 북미 신뢰의 측면에서 봤을 때 오히려 북핵 해법의 실질적인 모색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느쪽의 입장이 맞을지 향후 상황을 지켜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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