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김사인

 

 

풀들이 시드렁거드렁 자랍니다

제 오래비 시누 올케에다

시어미 당숙 조카 생질 두루 어우러져

여름 한낮 한가합니다

봉숭아 채송화 분꽃에 양아욱

산나리 고추가 핍니다

언니 아우 함께 핍니다

암탉은 고질고질한

병아리 두엇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의젓합니다

나도 삐약거리는 내 새끼 하나하고

그 속에 앉아

어쩌다 비 개인 여름 한나절

시드렁거드렁 그것들 봅니다

긴 듯도 해서 긴 듯도 해서 눈이 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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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날이 흐르고 있다. 역대급 폭염에 쌩쌩 달리던 자동차들도 가로수들도 꽃들도 마냥 늘어지고 수박도 사과도 복숭아도 타들어 가는 이 여름날! 매미도 더위를 먹었는지 목쉰 소리로 악을 쓰다 말고 모기들마저도 전의를 상실한 이 여름, 시인이 노래한 그런 여름날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햇빛도 사람도 꽃들도 닭들도 여름 한가운데 옹기종기 한가롭게 지나는 그런 여름날은 이제 진정 시속에나 존재하는 그림인가? 긴 듯도 해서 눈이 신 그 여름을 그려본다. 어린 시절 모깃불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 올려다보던 밤하늘은 참 신비한 물속 같았는데... 매연과 공해에 찌들어 열병에 신음하는 지구인의 한 사람이라서  답답하고  미안해지는 마음에 음미해보는 무공해 시 한 수가 신선하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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