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에서 혁신위로
녹색당의 문제점
의사소통 구조
리더십 
재건 모임의 대안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당의 변고로 일괄 사퇴한 게 아니었다. 모든 지도부급 인사가 차례대로 사퇴했다. 원외정당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녹색당의 이야기다. 2012년 창당 이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대로 당의 붕괴를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당원들이 움직여서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지난 4월2일 비공식적으로 ‘녹색당 재건을 위한 당원 모임(모임)’이 결성됐다. 모임은 당의 재건을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목표 아래 당원 발의 운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5월22일 개최된 임시 전국운영위원회(전운위)에서 <당 재건을 위한 혁신위원회 구성의 건>이 수정 통과됐다. 

관련해서 1일 오후 마포구에 위치한 청년 플랫폼 위드위드 사무실에서 당원 발의를 주도한 최영선 녹색당원을 만나봤다.

최 당원은 “시기적으로 보면 (당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낀 당원들이 4월2일 첫 모임을 가졌다. 총선 전이다. 탈당 사태들이 계속되다 보니 위기의식이 있어서 당을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마음에서 모임을 가져보자고 제안을 했다”며 “당내 페이스북 그룹이나 이런 데에서 여러 갈등 상황을 보고 글을 많이 쓰는 분들 중에 탈당하려는 분들 말고 당 재건의 희망을 갖고 있는 분들과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몇 분들을 모아서 첫 모임을 가진 것이다. 너무 답답하니까 일단 모여보자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최 당원은 서울 강동구에서 평당원으로 활동해왔다.

모임이 논의를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당원 발의를 통해 비대위를 꾸려보자는 것”이었다. 그 취지는 △당 지도부 인사 5명 전원이 공백인 최악의 위기 상황 △참담한 21대 총선 결과 △심화되는 탈당 사태 등 대략 3가지다.

최영선 당원은 당원 발의를 주도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최 당원은 “당원 직선으로 선출한 공동운영위원장 2명(신지예·하승수), 주요 당직자인 공동정책위원장 2명(백희원·이태영)과 전국사무처장 1명(박정경수)이 공백 상태”라며 “당내 갈등과 총선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재 성미선 임시운영위원장 체제다. (그동안 4기 대표단 최혁봉 전 공동운영위원장 딱 1명이 중도 사퇴한 사례는) 있었지만 8년 동안 (5명이 다 비어있는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이다. 녹색당 8년 역사상 주요 당직자 전체가 공백인 경우는 없었다”고 환기했다.

이어 “21대 총선 결과(5만8948표 0.21%)를 봤을 때 우리가 창당하자마자 치른 (2012년 19대) 총선에서 얻은 득표율(10만3842표 0.48%)의 반 밖에 안 된다. 우리가 8년 동안 활동한 것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해를 거듭할수록 원내 진입까지는 아니라도 득표율이 높아져야 하는데 창당 초기 득표율의 2분의 1 밖에 안 된다는 것은 당의 존립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나아가 “이런 상황으로 인해서 대거 탈당자가 발생했다. 1월부터 4월까지 정확한 수치를 말해줄 수는 없지만 탈당 흐름이 너무 거세다. 이렇게나 큰 규모로 대거 탈당 사태가 벌어진 것도 처음”이라며 “나간 분들은 실망을 했을텐데 갈등의 당사자도 있고 당의 문제해결 능력이 없어서 실망한 경우도 있을테고 다양하다”고 정리했다.

최 당원이 추정하는 탈당의 유형은 크게 △신지예 전 위원장(올해 3월 탈당) 지지 그룹 △당의 무력함에 실망감을 느낀 그룹 △선거 연합정당 반대파 등 3가지다.

최 당원은 “(신 전 위원장의 지지 당원들이) 대거 탈당했지만 전체 탈당자의 다수가 전부 신 전 위원장의 지지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며 “그분들이 탈당을 많이 하긴 했지만 당의 무능력에 실망한 당원들이나 선거 연합정당에 반대한 분들도 많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탈당한 당원들 또한 여전히 당이 어떻게 재건되는지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망했지만 당이 어떻게 일어서는지를 보고 돌아올 분들도 계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최 당원과 모임에 관하여 오해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최 당원은 “처음에는 이런 오해도 있었다. 전운위원들 중에는 선거연합 반대파들이 발의를 주도한 것 아니냐는 거다. 나도 사실 선거연합 전당원 투표(3월13일~15일)를 보이콧했다. 당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이 충분치 못 했고 민주적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당원 발의 운동을 조직할 때는 선거연합 찬성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전운위는 5월29일 당 홈페이지를 통해 혁신위 구성 안건의 통과 사실을 알리며 “(당의 기반이) 작지만 단단한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 총선 전후 우리는 작은 당내 갈등도 해결하지 못 하고 당 안팎으로 정치적 신뢰를 줄 수 없는 허약한 정당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성했다.

당내 평등 문화가 견고한 녹색당의 문제점은 뭘까.

최 당원은 “당내 토론이 치열하지 않고 그러니까 당내 정치를 해야 하는데 당밖 정치를 하는 그런 문화가 좀 있었다. 이번 혁신위를 통해서 당내에서 치열하게 토론하되 최종적으로 당의 방침이 정해지면 모두가 수용하는 그런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물론 역으로 따져보면 페북에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글을 쓰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당내 토론 과정이 약하고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즉 “당내 토론 과정이 잘 안 된 상태에서 뭔가 일방적으로 결정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서운함이나 억울함이 남아서 페북에 쓰게 된다. 우리의 당내 토론 문화가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당원은 “충분한 소통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자기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결정되면) 당연히 내 의견이 부정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의견이라도 공식적으로 전달해봤어야 그게 반영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는데 그런 게 거의 전무하다”며 “주요 당직자가 나와 생각이 비슷한 것을 추진하고 있으면 다행인데 다르면 무조건 비판적 입장을 갖게 된다. 왜 그런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여유가 없다. 내 맘에 들어 안 들어? 이런 문제가 된다”고 묘사했다. 

소통 구조와 제대로 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 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최 당원은 “민주적 소통을 위한 방식과 플랫폼도 만들어야 하지만 감정과 태도의 문제도 있다고 본다”며 “우리가 교육이라고 하면 착각하는 게 뭐냐면 기후위기, 페미니즘, 기본소득 등 다양한 의제들을 공부하고 교육할 때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그걸 어떻게 녹색당의 실천으로 가져가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려면 당원들과 힘을 모으고, 지역사회에 홍보하거나, 저변을 확대하거나, 당내 정치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대한 공부는 없다”며 “정책적 지식을 위한 공부의 공간은 열려있지만 이것을 실질적으로 펼칠 방법론에 대한 교육과 공부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리더십 문제도 결국 당의 허약한 기반과 연결돼 있다.

최 당원은 “두 분(신지예·하승수)의 리더십에 각자 특성이 있고 그게 당이 잘 굴러갈 때는 긍정적인 시너지를 발휘하지만 당에 문제가 있을 때는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단 역할 분담이 잘 안 됐던 것 같다”며 “다시 토론 문화와 의사결정 구조가 중요한 것이 나는 당내에서 계파도 있을 수 있고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게 사람과 감정 중심이면 곤란하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거기에 감정이 개입되어 그 사람을 공격하는 이런 것들 때문에 갈등이 깊어진 것 같다”고 풀어냈다.

이어 “사실 두 분을 중심으로 벌어진 갈등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그 갈등을 끄집어내서 다시 살펴봐야 점점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참담한 기분만 든다”고 토로했다. 

녹색당의 리더급 정치인들이 왜 끝이 좋지 못 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고찰도 필요하다.

최 당원은 “왜 녹색당의 훌륭한 정치인들이 성장해서 이탈하는가. 역대 녹색당에서 활동하고 출마했던 정치인들은 너무 아까운 분들이다. 그 소중한 인물들 녹색당을 대표할만한 정치인들이 녹색당 밖으로 나가는 그 구조적인 문제점을 진단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우리 안에서 성장한 정치인이 녹색당 소속으로 원내 진입을 할 수 있도록 그런 시스템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실 원외에 그 정도의 네임밸류 있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인데 그걸 잃어버렸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며 “우리 당에 스타 정치인은 있지만 팀으로 끌어가는 팀 리더십은 없는 게 뼈아프다. 리더는 바뀔 수 있고 역량이 다 다르고 스타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팀 리더십이 구축되지 않다보니 그 1명만 빠지면 구멍이 생긴다”고 역설했다. 

녹색당은 혁신위원을 모집하고 있다. (자료=녹색당)

모임은 이러한 각종 문제점들에 대해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①당의 갈등관리 역량 부족 ②상벌위원회 기구 실질적으로 개편 ③기존 도메인 주소 외에 홈페이지 전면 개편 ④전운위원으로 청년과 청소년 당원 의무적으로 할당 ⑤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당원들에 대한 온라인 플랫폼 구축 ⑥현 전운위원들 전원 사퇴 및 비대위에 전권 부여 ⑦기존에 열심히 활동해준 전운위원들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혁신위 구성 ⑧당의 정체성 관련 백가쟁명 ⑨분야별 대변인 선임을 위한 대변인단 구성 ⑩‘공동운영위원장’에서 ‘공동대표’로 변경 등이 있다. 

모임은 전운위와 협의한 결과 ⑥이 아닌 ⑦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최 당원은 “일상적인 전운위의 역할과 함께 혁신위의 혁신안 성안 기능이 투트랙으로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⑩에 대해서는 “(모임에서) 운영 중심으로 공동운영위원장이란 말을 쓰는데 공동대표로 변경하자는 제안이 되게 많이 나왔다. 당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당을 대표하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사실 녹색당 당헌당규상 당원 발의 제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회로가 있다. 전운위에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서는 5명 이상의 전운위원이 동의해줘야 하는데 만약 5명 미만의 전운위원이 안건을 상정하려면 당규 11조2항에 따라 선거권을 보유한 전체 당원 중 1%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된다. 이런 방식을 통해 최 당원이 대표 발의자로 나섰고 더불어 당원 140명이 동참해서 <당 재건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의 건>을 전운위에 상정했다가 ⑦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혁신위의 활동 내용은 △당 조직 개편안 작성 △강령·당헌·당규 등 개정 △정치 전략 수립 △당의 역량 강화 계획 마련 △지역당 강화 계획 마련 △당의 민주적 활동 활성화 모색 등이다. 

최 당원은 “엄밀히 말하면 권한상 비대위급은 아닐지 모르지만 전운위가 혁신위의 위상에 대해 제대로 합의를 해줬다”며 “혁신위는 위원장 포함 최소 12명이고, 여성 할당 50% 이상이고, 당권자 1% 이상(선거권 보유 당원 5명 이상의 추천으로 입후보하고 63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최종 선임)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혁신위원 출마자는 출마의 변을 당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임기는 3개월이고 추후 상황에 따라 2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6월20일 내에 혁신위가 출범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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