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 박주환 기자] 경제란 무엇일까. 외교도 안보도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지금 세계는 관세라는 실탄을 앞세운 '시크릿 워(Secret War)'에 돌입했다. 트럼프가 돌아오자 관세 압박은 현실이 됐고, 각국은 보복·협상·순응·방관이라는 네 갈래 반응으로 갈라지고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 아직 어느 쪽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협상과 순응과 방관의 중간 어디쯤에 서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 금마저 가격이 흔들리는 기축통화
달러를 금 대신 석유에 연동시켜 만든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 지위를 경제무기처럼 활용하고 있고, 이에 반발한 중국·러시아·중동은 결제 체계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축통화의 안정성은 약해졌고, 금마저 가격이 흔들린다. 줄을 설 곳이 없다면, 내실부터 다져야 한다.
▲ 새로운 용도별 산업 구별이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제조업은 중국에 추월당했고, 첨단 산업은 미국과 중국이 양분했다. 그런 틈새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전략은 역사 속에 있다. 이 땅의 역사는 외적에 맞서, 작은 힘을 한데 모으는 데에 생존의 관건이 있었다. 지금 그것을 적용하면, 해답은 기술 하나가 아니라 기술 간의 초연결, 산업 간의 융복합이다.
핵융합은 완성이 요원하다. SMR은 아직 실증 단계이고, 바이오는 상용화 경쟁에서 선두가 아니다. 바이오매스는 효율이 낮고, 압전소자는 소규모 전력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기술들이 서로 연결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이오매스의 낮은 효율은 ESS(에너지저장장치)와 결합하면 극복할 수 있다. ‘슬로우 에너지’라는 약점은 저장을 전제로 하면 강점으로 바뀐다. 압전소자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밟는 압력으로는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진동하는 구조물(고층 빌딩이나 선박)에 적용하면 유의미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이 각각의 기술은 혼자선 성과를 내기 어렵다. 누군가는 큰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잘게 쪼갠 기술을 맡아야 한다.
▲ 컨소시엄? 하도급? 조별과제? 그 중간 어디쯤
이 방식이 성공하려면 프로세스를 세분화하고, 그에 따라 리스크도 분산해야 한다. 대기업은 판을 짜고, 중소 기술기업들이 모듈 단위로 개발을 맡는 구조다. 기존의 하도급 구조와도, 컨소시엄 모델과도 다르다. 제도를 고치고, 연결의 방식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국가 간 무역장벽과 글로벌 초거대기업들의 폐쇄적 수직계열화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우리 역시 덩치가 큰 주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덩치만 키우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인건비가 싸다고 선택받는 시대가 아니다. 생산을 맡기는 국가나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가, 그게 관건이다. 미국이 더는 인건비만 보고 중국에 생산을 맡기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작업을 원자 단위까지 잘게 쪼개고, 치밀하게 연결해야 한다. 대기업은 통합 설계자이자 리스크 조정자, 글로벌 판매망 구축자로 기능해야 한다.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영역과 역할을 명확히 수행할 때, 효율과 신뢰가 함께 생긴다.
▲ 어디까지가 산업인가, 정부와 국회는 무엇을 봐야 할까
기술이 융합되면 산업의 경계는 흐려진다. 예컨대 태양광이 유리에 들어가고, 그 유리가 디스플레이가 된다면, 그것은 에너지 산업인가, 전자산업인가, 건설업인가. 한 기술이 동시에 여러 산업을 포괄할 수 있다.
생물연산은 대표적 사례다. 뇌세포를 연산 장치로 활용하는 이 기술은 바이오인가, IT인가? 어쩌면 둘 다일 수 있고, 어쩌면 새로운 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경계가 무의미해진 시대에 중요한 건 ‘무엇이냐’보다 ‘어떻게 연결되느냐’다.
여기에 국가의 역할이 있다. 중복과 오류를 방지해 비효율을 줄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삐끗하면 추락하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속도를 더 내야 한다. 정책, 산업 분류, R&D 예산 모두 기존 틀로 접근해서는 미래 기술을 뒷받침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대격변을 맞이한 시장 변화에 실시간(Real-time) 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아니, 물리적으로 대응할 수는 있는가? 시장의 일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빠르다.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눈먼 돈을 긁어모으는 자, 규제 공백을 악용해 시장을 교란하는 자, 그리고 시장에 순환돼야 할 자본을 가로채는 자들을 가려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시장경제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이다.
이제 시간이 정말 부족하다. 하루라도 빨리 ‘기술 조합의 유의미함’을 중심에 둔 법과 정책 설계, 그리고 기업의 시각 변화가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