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서 전기로, 전기에서 다시 열로, 버려지는 열을 써먹을 순 없을까
[중앙뉴스= 박주환 기자] 데이터센터는 전기먹는 하마다. AI 연산이 늘어날수록 전력 소비량은 끝없이 늘어날 것이고, 그 에너지는 다시 열로 변할 것이다. 전기는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과정에서 나온다. 전기와 열은 분리된 두 개념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가며 흐르는 하나의 에너지인 것이다.
데이터센터가 만들어내는 열은 지금까지 대부분 버려졌다. 전기를 다시 생산할 만큼 효율이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이 열을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걸까. 난방이나 온수처럼 이미 존재하는 수요와 연결할 자리는 없을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를 460~500TWh로 추정한다. 전체 전력사용의 약 2%다. 같은 해 우리나라의 전기 생산량은 약 588TWh 수준으로 집계된다. 단일 산업군이 대한민국 전체 전력 생산량에 맞먹는 소비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해외 사례
핀란드·스웨덴·덴마크 등의 유럽은 데이터센터 폐열을 난방자원으로 흡수하는 난방망 구조, 히트펌프 기반 온도 표준, 열수송 인프라 등 구조를 제도적으로 마련한 지역들이다. 특별한 기술을 도입했다기보다, RE100 같은 재생에너지를 주력으로 사용한다는 정책이 핵심이다.
핀란드 에스포에서는 텔리아가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미온의 폐열을 지역난방회사 포툼(Fortum)이 수집한다. 데이터센터에서 빠져나온 30도 안팎의 물은 대형 히트펌프를 거치며 70도대의 난방열로 변환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은 공동주택과 학교 등으로 흘러들고, 포툼(Fortum)은 이를 통해 연간 2만5000가구에 해당하는 난방열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여러 데이터센터 폐열을 모아 하나의 열저장고처럼 운영하는 구조다. 시와 에너지기업이 만든 '스톡홀름 데이터 파크(Stockholm Data Parks)'는 개별 데이터센터가 각자 열을 처리하는 대신, 도시 전체의 열망에 폐열을 편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부 사이트는 실제로 수천 가구 난방을 담당할 정도의 열량을 공급한다.
덴마크 오덴세에서는 메타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도시 난방망과 직접 연결돼 있다. 서버에서 나온 30도 전후의 물은 열교환과 히트펌프를 통과하며 난방 표준온도까지 도달한다. 오덴세 시는 연간 약 10만MWh, 약 7000가구 난방량에 해당하는 열을 이 방식으로 회수한다고 밝히고 있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기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도시가 이미 재생에너지를 이용할 경로를 만들고 있었고, 데이터센터가 자연스럽게 들어맞은 것뿐이다.
기술적 현실, 폐열은 생각보다 온도가 낮다.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열은 생각보다 낮다. 30~45°C 정도의 미온이다. 난방에 쓰려면 60~80°C까지 올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히트펌프가 필요하다. 효율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추가 에너지가 들어가는 만큼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냉각 방식에 따라서도 회수 조건이 달라진다. 공기로 열을 식히는 공랭식보다는, 처음부터 물이나 냉각액을 쓰는 수랭식·액침냉각식이 훨씬 유리하다. 열이 공기보다 액체를 통해 방출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국내 사례
한국에서도 폐열 활용은 개념 단계를 넘어 실증 사례가 있다. LG CNS의 과천 IDC는 수랭식 냉각을 적용해 서버에서 나온 폐열을 건물 난방과 온수 공급에 활용했다. 국내에서 폐열이 실제 열원으로 기능한 초창기 사례다.
한국지역난방공사(KDHC)는 데이터센터·산업단지·지하철 등에서 나오는 저온 폐열(30~40°C)을 히트펌프와 결합해 난방에 사용할 수 있는지 장기간 연구해왔다.
한편 용인·파주·김포 등지에서는 IDC가 몰려 있는 지역에서 1~2km 이내에 열수요가 확보될 경우 경제성이 나온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열수송 거리가 짧고 수요가 모여 있는 지역이라면 폐열 전환이 현실적으로 성립한다는 의미다.
TES(축열, 열에너지저장)나 ESS를 냉각설비와 연동해 냉·열 부하를 조절하는 실증도 일부 진행됐다. 이는 폐열 자체를 끌어올리는 기술은 아니지만, 시간대별 냉·열 부하를 안정화해 회수 조건을 유지하는 보조 인프라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 주도 정책 추진해야
한국의 데이터센터는 대부분 수도권 외곽에 몰려 있고, 지역난방망은 도심과 신도시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해외처럼 대규모 열수송으로 도시 전체를 데우는 구조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논의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맞는 구조를 찾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
국내 기업들은 HVAC·히트펌프·수랭·TES 등 열관리 기술력이 높다. 이 역량이 IDC 주변의 산업단지·업무지구·연구시설 같은 근접 수요와 만날 때 국내형 폐열 재활용 모델이 그려진다.
IDC 집적지라면 짧은 거리 안에 열을 필요로 하는 구역이 존재한다. 거리 자체가 짧아 손실이 적고 설계가 단순하다. 여기에 ESS를 더하면 냉·열 부하를 시간대별로 조절해 회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폐열 자체를 끌어올리진 않지만, 회수 조건을 부드럽게 맞춰주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지역에서도 중앙정부나 기술, 특정 기업에 끌려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정책을 이끌 수 있다. IDC 유치 지역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폐열을 활용할 수 있는 생활권이라면 주택·상업시설·공공시설의 난방비와 전기요금을 낮추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가 지역에 부담을 주는 시설이 아니라, 지역에 이익을 돌려주는 기반시설이 되는 그림이다. 지금 당장은 도시 규모로 시도하기보다는 IDC 인근 수요, 국내 기술역량 개발, 지역 정책 인센티브로 이어지는 구조를 설계하는 편이 현실적일 것이다.
시사점
데이터센터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시 정리될 필요가 있다. AI 자동화로 전통적 공장과 일자리 중심의 사회 구조가 급변하는 이 시점에서 폐열은 단순 비용이 아니라 잠재적 자원으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IDC 인근 수요, 국내 기술 역량 개발, 지역 정책 인센티브가 잘 어우러진다면 지역의 온도 관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예컨대, 지역 농가나 공공시설의 열원으로 공급하는 방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발전 시설도 마냥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전기를 만들다 생성된 열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지역의 이익으로 되돌려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기술 용어 한눈에
HVAC(Heating, Ventilation, Air Conditioning) : 난방·냉방·환기를 모두 관리하는 공조 시스템. 데이터센터에서 공기의 흐름과 온도를 총괄하는 '전체 설비'를 뜻한다.
히트펌프(Heat Pump) : 낮은 온도의 열을 높은 온도로 끌어올리는 장치. 데이터센터 폐열(30~40℃)을 난방에 쓰기 좋은 60~80℃ 수준으로 만드는 데 필요하다.
TES(Thermal Energy Storage, 열에너지저장) : 열을 '잠시 저장해두는' 장치. 전력이 남는 시간대에 물을 데워두거나 식혀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쓴다. 폐열 회수의 효율을 높이기보다, 회수 조건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에 가깝다.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장치) :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순간 공급하는 대형 배터리. 데이터센터의 시간대별 냉·열 부하를 조절해 폐열 회수의 안정성을 높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