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 상태를 되돌릴 통큰 합의는 없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이해찬 대표의 솔직한 마음, 개헌 권력구조에 대한 총리추천제 거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분명 원내는 파행 상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에 대한 임명을 강행한 정부여당에 단단히 불만이 쌓여있고 여러 명분을 들어 국회를 보이콧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를 풀어갈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고 그저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5당 대표들과 부부 회동을 가졌다. 

문 의장은 16일 19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의장 공관에서 만찬을 열고 “불교에서는 수천 겁의 인연을 쌓아야 부모, 형제, 부부 등의 인연을 맺는다고 하는데 이 시기에 여러분이 각 당 대표로 만난 것도 엄청난 인연의 결과다. 이런 모임 자체가 소중하다”며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덕담을 건넸다. 

이어 “5당 대표가 서로 잘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관계다. 5당 대표가 결심하면 개헌이든 선거제도 개혁이든 다 이룰 수 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문희상 의장과 4당 대표의 부인들 그리고 이정미 대표가 모두 모였다. (사진=국회의장실 제공) 

이미 문 의장은 5당 대표 월례 모임(초월회)을 주재하고 있는데 그만큼 여야 파행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장치를 둔 의미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5당 대표들은 보이콧 상태인 정기국회를 하루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당위에 공감대를 이뤘다. 

그럼에도 대표들마다 정상화를 위한 방법론에서 이견을 드러냈고 통큰 합의는 이뤄내지 못 했다. 현재 공식적으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정부여당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①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국정조사 수용 ②(인사 책임 관련)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해임 ③(인사 책임 관련)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3가지다. 당장 문 대통령이 해외 출장 중이기 때문에 ②과 ③은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①은 민주당의 결단으로 가능할 수 있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①을 요구했지만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무쟁점 민생 법안들을 처리하자는 차원의 당위만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이해찬 대표는 전날(15일) 리종혁 부위원장(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과 만나 논의했던 남북 국회회담에 대해 거론하면서 “리 부위원장은 당장 회담을 열기보다는 국회의원들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국회회담을 하기 보다 의원 교류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리 부위원장이 특히 야당이 함께 평양에 올 수 있을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야당이 여러 개인데 한 야당(한국당)은 잘 모르겠다. 그 야당도 함께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각 당대표와 문 의장의 부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국회의장실 제공)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이번 국회가 역사에 남는 국회가 되도록 하자. 1987년에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 체제로 바뀌었다면 2020년에는 국회의원을 뽑는 체제를 바꿔 온건 다당제로 가야 한다”며 취임 이후 머릿 속을 지배했던 선거제도 개혁을 언급했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다음 초월회(12월3일)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대표들의 의견을 명확히 하고 거리를 좁혀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양당 대표들은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에 원론적인 동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솔직한 이견을 드러냈다.

김 비대위원장은 “그때(다음 초월회)는 원내대표 경선 시기와 맞물려 그런 입장(선거제도 모델에 대한 당대표 차원의 공식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지만 그것이 당 전체 의견은 아니”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해찬 대표는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르면 제1당은 차지할 의석을 지역구 당선자로 다 채울 수 있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많이 가지기 어렵다. 그럴 경우 직능성과 전문성을 가진 비례대표의 영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제1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기존의 의석을 잃더라도 비례성 강화로 나아가야 한다던 당위적 입장에서 한 발 후퇴해 속내를 노출했다.

3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이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손사레를 치는 내용이지만 이해찬 대표가 이 점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처음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예컨대 전체 100석 중 정당 득표율이 30%면 30석이 당선자 수로 픽스되고 여기서 지역구 당선자가 20석이면 비례대표 10석을 더 얻는 모델이다. 하지만 현재 지지율이 가장 높은 민주당의 경우 정당 득표율로 30%를 얻었다고 했을 때 지역구 당선자가 28석이면 고작 2석만 비례대표로 확보하게 된다. 이해찬 대표의 난색 표명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일단 문 의장은 “5당 대표가 이 정도로 깊이 있게 선거제도 개혁을 얘기해본 적이 없다”며 있는 그대로 견해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가벼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주제의 논의가 오갔다. (사진=국회의장실 제공)

결국 의회 권력을 결정할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행정부 권력의 형태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곧 선거제도와 개헌을 연동하자는 일반론으로 분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워낙 양당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게 개헌 문제라 선거제도와 연동하면 둘 다 좌초될 위험성이 있어서 둘을 분리하자는 것이 3당의 컨센서스다. 

그럼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필연적으로 분권형 개헌에 따른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오게 되고 이와 관련 김 비대위원장은 권력구조의 대안으로 총리추천제를 제안했다. 문 의장은 국회가 특별검사 후보를 추천하듯이 복수로 총리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추천제는 6.13 지방선거 이전 3당 개헌 연대가 공식 제안한 절충 모델로서, 대통령제 유지를 원하는 민주당과 최대한 의회로 권력을 가져오고 싶은 한국당을 중재하기 위한 카드였다. 

양당이 합의할 수 있는 유력한 모델인 총리추천제가 다시 수면 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이해찬 대표는 “문 대통령이 여야 5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을 조만간 추진할 것”이라며 여야 파행을 극복하기 위한 자리가 한 번 더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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