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확정된 일정, 미국 말고는 제재 완화를 통한 경제 건설 불가능, 미국에 대한 협상력 차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일종의 패턴처럼 보였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은 필요악이다. 안 보고 싶을 만큼 적대관계였던 70년의 역사가 있지만 경제 건설을 위해 꼭 상대해야 하고 관계를 풀어야 한다. 그래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이 잘 안 풀리면 문재인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이번에도 그랬다. 8일 아침부터 김 위원장이 방중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타전됐다. 사실 김 위원장의 4차 방중은 12월 초에 픽스된 일정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10일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중국을 방문한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8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지난해 9월 즈음 한중차세대지도자협회 모임차 중국 당교(연수기관이자 시진핑 직속 기관)에 갔던 일화를 소개했다. 북한이 개혁개방감독국(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혁원과 같은)을 만들었는데 소속 간부들을 당교에서 교육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게 성사돼 12월에 1차 교육을 받기 위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중국에 갔는데 이때 김 위원장의 방중 일정이 조율됐다는 것이다. 

4차 방중의 목적은 명확하다. △경제 건설을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동시에 △미국과의 빅딜을 대비하기 위한 중국의 뒷배를 견고히 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특별 기차로 베이징에 갔고 인민대회당에서 시 주석과 회담했다. 첫 날 일정 중에 1시간 정상회담으로 디테일을 논의한 것 같지는 않고 사전에 참모 간의 의제 조율을 다 해놓고 정상 간 최종 확인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침 2019년이 북중 수교 70주년이고, 1월8일은 김 위원장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이를 치하하는 것도 방중 일정으로 채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저녁 4시간 동안 인민대회당에서 환영 만찬이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정례 브리핑을 내고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변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중국 지도자와 함께 국제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궁극적으로 김 위원장의 방중은 미국없는 경제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화답”을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성사됐다고 볼 수 있다. 전세계 기축 통화는 달러이고 UN(국제연합), IMF(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 글로벌 경제 질서가 미국 위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제재 완화는 미국없이 현실화 될 수 없다.   

지난 방중 때 비행기를 탄 것과 달리 이번에는 열차를 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방중 때 비행기를 탄 것과 달리 이번에는 열차를 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 입장에서 이런 거다. 

미국을 패싱하고 중국이나 러시아와 비핵화 협상을 해서 제재 완화를 받아내거나 원조를 얻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들을 좀 더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협상력 제고 카드를 미국에 보여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1일 발표한 신년사를 보면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해 상응하는 실천 행동으로 화답에 나선다면 두 나라 관계는 보다 더 확실하고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훌륭하고도 빠른 속도로 전진하게 될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 화답은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완화하거나 해제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만약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6.12 싱가폴 공동성명)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고 일방적으로 그 모습을 강요하려 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며 조건부 메시지를 던졌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언급된 “새로운 길”과 관련 “바로 외교적인 방식으로 미국의 압박을 견제할 수 있는 나라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제 부득불이라는 말이 중국으로부터 그런 도움까지 받는 것에 대해서 북한이 사실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미국이 계속 그러면(선제적 제재 완화없이 핵 리스트 신고만 요구한다면) 중국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고. 중국이 지금 G2는 된다. 두 번째 강국인데 중국 같은 나라를 끌어들여서 이야기를 하면 미국이 함부로 못 한다”고 해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2018.6.21
김 위원장이 지난해 6월19일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하 의원도 7일 방송된 MBN <판도라>에서 “김 위원장이 경제 발전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협상이 깨지는 것을 본인도 두려워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한테 양보할 자세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계속 도발적인 내용이 가면 미국 여론도 나빠질 것이고. 그래서 미국에서 보면 가시가 있지만 장미꽃을 즉 한 방 할 수 있다(는 걸 신년사를 통해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미국에게 양보할 뜻이 있다는 게 장미라면 가시는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거다. 이론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 비핵화 협상 안 하고 중국 러시아와 할 것이다. (북중러와 비핵화 작업을) 진행하고 거기서 검증하라고 하고”라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점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려는 것은 경제 발전을 하려는 것이고 제재 완화의 키는 미국이 쥐고 있다. 그거(새로운 길)는 뻥이고 오히려 답답한 것은 북한”이라고 주장했다.

정리해보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했고 이번에도 뭔가 제대로 된 빅딜이 없으면 정말 안 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중국에 간 것이다. 즉 오래 전부터 4차 방중 계획을 세워놓고 신년사와 방중 이행으로 2차 북미 회담의 결과를 이끌어보겠다는 의중이 드러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언론은 백악관의 실무팀이 2차 북미 회담 장소로 △방콕 △하노이 △하와이 등을 사전 답사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북미 실무팀이 장소에 대한 논의를 위해 접촉하지는 않았다고 추측했다. 일단 곧 열리긴 열린다는 것인데 동시에 실무 논의와는 별도로 의제 조율이 얼마나 이뤄졌을지가 중요하고 김 위원장의 방중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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