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종민] 이성과 감성을 해부하며 비틀어 본다. 우선 이성(理性)이다. 이와 헷갈리는 이상(理想)이란 단어가 있다. 어휘가 비슷하지만, 이성(理性)과 이상(理想)은 천양지차로 뜻과 쓰임새가 다르다.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이성은 1.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해 이르는 말. 2. 진위 선악을 식별하여 판단하는 능력. 3. 절대자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으로 돼 있다.

박종민 수필가/시인
박종민 수필가/시인

다음으로 이상(理想)을 해석해보자, 이상은 1.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본인만의 생태. 2.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완전무결한 상태, 또 는 절대적인 지성이나 감정의 최고조에 도달된 형태의 실현 가능한 상태이다. 이처럼 이성과 이상의 낱말 사이에도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온다. 혼동해선 안 될 낱말이다.

이젠, 감성(感性)이다. 감성이란 말과 함께 자주 쓰는 단어로 감정(感情)이 있다. 이 두 단어 역시 혼동하기가 쉽다.

감성이란 1.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 2. 자극을 주었을 때 자극의 방향과 다르게 어느 일정한 방향으로 운동을 일으키는 성질. 3. 이성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외부나 내부를 불문하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대상을 오관(눈 귀 코 혀 피부)으로 감각하고 지각하여 표상을 형성하는 인간의 인식능력이라고 나와 있다.

다음으로 감정(感情)이다. 감정은 어떤 현상이나 일이나 사물에 대하여 보고 느껴서 판별할 때 도출돼 일어나는 마음이 가는 상태, 한마디로 느끼는 마음과 기분이다. 이렇게 감성과 감성이 말맛의 별 차이점은 없으나 그런 서로 비슷한 낱말과 어감의 사이에도 천양지판(天壤地判))이다.

이성과 감성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구분해 처신해야만 된다. 하지만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공직 지위에 있는 사람들조차 이를 모른다. 이성적인 사고(思考)로 직분에 충실해야 하며 감성적인 사고는 자제해야 하건만 전혀 아니다. 이성적 사고 감성적 대응을 판단하지 못하는 무리 들이 우리 정치권에 많이 끼어 있기에 심각하다.

지식인으로 자처 하지만, 아집과 독선에 가득 찬 채 몰지각한 언행을 일삼는다. 막말에 삿대질에 때론 밀고 끌며 몸싸움 힘겨루기까지 난투극이 벌어진다. 씩씩거리며 아우성치고 뻔뻔스럽게 잘난체한다. 국민의 이목은 도외시한다.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외면하며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있다.

정치판이 이러하니 여의도가 조용할 날이 없다. 이들의 성향은 어느 사건이나 사안을 이성적으로 사고(思考)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면서 이상(理想)으로 답을 찾아야 하건만, 고찰(考察)과 사려(思慮)가 전혀 없이 감성을 앞세워 대응하고 있다.

이론이나 정황이나 실상을 파악 분별해서 상대방과 협의하고 토론하여야 하는데도 그게 아니다. 이도 저도 따질 것 없이 무작정 상대편의 감성을 간과하며 무시하는 것이다.

이성적 사고 앞에다 감성과 감정을 대입시키니 협의와 협상 협력이 제대로 형성될 리가 없다. 내 편은 긍정이고 네 편은 부정이다. 민의의 전당에 진정한 협의나 협상은 온데간데없고 헐뜯기와 험담만 넘쳐난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

이런 실상이니 편이 쫙 갈라지는 것이다. 마치 모세의 기적이라는 바닷물이 갈리는 것 같다. 끼리끼리 뭉쳐 내 편이면 예스 오케이다. 국민의 위임받은 의사와 의제는 어디다 내팽개쳤는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이 없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야 할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고 자기들 편익만을 위한 정치로 기울고 있으니 국민의 신뢰와 신임을 못 받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사리를 분석하여 이상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해야만 되는데 감성을 들이대니 충돌이 불가피한 게 아니겠나. 이성과 감성이 올곧게 조율이 될 때 사리(事理)가 바르게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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