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돈을 푼다 또 푼다
RP와 제로금리로 푼다
무리가 되더라도 미국처럼 푼다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금융사에도 왕창 풀고 기업에도 직접 푼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오죽하면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야 한다고 말했을까. 미국 중앙은행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벤 버냉키 전 의장은 2002년 당시 극심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다. 

2가지 수단이 있다. 대표 이자 즉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춰서 돈을 많이 빌려가도록 하는 것과 함께 양적완화가 있다. FRB가 채권을 마구잡이로 사들여서 시장에 달러를 푸는 것이다. 

달러 등 현금을 시장에 풀게 되는 코로나 정국.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한은)은 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RP(환매조건부채권)를 왕창 사들이기로 방침을 정했다. RP 매입 한도를 없앴다. 원래 RP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돈을 공급해왔지만 코로나19로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곤두박질치자 무제한적으로 사들이겠다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RP는 채권의 종류다. 그러니까 빚증서를 발행해서 돈을 빌려오는 것이다. RP는 발행처에서 만기가 되면 정해진 이자와 할인율을 적용해서 반드시 매입처로부터 다시 채권을 사들이는 것을 약속한다는 의미가 있다. 예컨대 알파 금융사가 1만원짜리 1년 만기 금리 2% RP를 발행했다면 한은이 그걸 1만원 주고 사주는 대신 2년 후에는 무조건 1만200원으로 다시 사야 한다.  

RP는 금리와 유동성 상황에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채권이다. 이미 지난 16일 한은은 역사상 최초로 제로금리(0.75%포인트)를 선언했다. 제로금리와 함께 RP 무제한 매입으로 금융시장에 돈줄을 쏟아붇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은과 FRB는 그 위상 자체부터 다르다. FRB는 기축통화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의장은 세계 금융 대통령으로 불린다. 전세계에 촘촘히 달러가 확산돼 있어야 달러로 무역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FRB와 미국만의 양적완화가 가능하다. 미국 외에 여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 방식으로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다시 말해 한은이 미국처럼 한국판 양적완화를 결단할 정도로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사실상의 양적완화 아니냐라고 여쭤봤을 때 저희가 꼭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는 없고 그렇게 보셔도 크게 틀린 건 아니다는 말씀으로 대신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은은 4월~6월 내내 RP를 매입하고 기간을 더 늘려서라도 추가 매입에 나설 태세다. 이렇게 풀릴 자금은 100조원 규모의 문재인 정부 재정 지원의 원천으로 쓰일 예정이다. 한은이 기획재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조세 수입으로 재정을 채우고 그 돈을 예산 형태로 쓴다. 여기에 더해 중앙은행의 금융 정책에도 도움을 받아 돈을 공급한다. 국가가 돈을 쓰는 방식이 바로 재정정책과 금융정책(통화정책)이다. 

어쨌든 이렇게 국가가 확장적 재정 기조를 표방한다면 금융사들은 자금을 장전해놓고 여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에게 싼 이자로 대출을 최대한 많이 해줘야 한다. 그게 한국판 양적완화의 목적이다. 

한은은 당장 RP 매입처 범위에 증권사 11곳을 추가하고 다양한 종류의 채권들도 매입 검토할 계획이다. 나아가 한은은 기재부가 뒷받침만 해준다면 RP 외에 일반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도 매입하겠다고 예고했다. 금융사에도 돈을 풀고 금융사없이 다이렉트로도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