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수의 이야기

[중앙뉴스= 김상미 기자 ] 대한민국 마도로스 1세대인 신영수의 ‘마도로스의 삶과 人生’을 통해 바다를 유영하는 유목민 마도로스의 세계를 품은 진실한 삶과 인생을 연재를 통해 엿본다. 신영수는 부산 출생으로 5대양을 다니며 세월이란 그것을 보내는 장소에 따라 전혀 그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육지에서 차분하게 한가지의 생업에만 종사하며 비록 체바퀴를 닮은 생활일지라도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정착민과는 다른 이 배 저 배 끊임없이 옮겨다니는 선원들의 삶은 유목민이다. 그 유목민 마도로스의 세계를 그의 작품을 통해 체험해 본다. [편집자주] 

바다에 비춰보고픈 나의 自畵像

영원한 같은 모양새로 역사를 이어갈 일망무제의 바다 앞에
모 詩人이 10년간만 읊은 것처럼
나 역시 영원히 해양을 노래하고 싶은 것은 떠나보지 않은 저 푸르름에 매료되어
내 속을 살아가야 하는 의무일 것 같고
또 그러고 싶은 것이다.

해면에 비치인 내 자화상은 볼품도 없지만
혼신이 응결되어 비치이는 그 정직스러움 앞에
나는 얼마라도 광활한 해양의 호흡을 흠씬 들이키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다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서도 느껴지는 바와 같이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안다는 일이 여간만 어렵지 않다는 뜻일 것이고
결국은 거울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듯
자기의 내면을 그렇게 쉽게 꿰뚫어 볼 수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자화상이라고 한다면
외모에서만이라기보다는 더욱더 자기 자신의 내면을 얘기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그럼에도 애써 이처럼 어려운 제목을 붙는 채 늘어지고 싶고
그러므로 그것도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려서 면경을 나의 눈앞에 두기보다는
저 넓고 깊고 푸르른 대양에다 나의 알몸을 던져 넣어서 비춰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껏 배워 익혀온 지혜와 요량만으로는
미약한 자신을 요리조리 훑고 조리 뜯어봐야겠으므로
난 지금 집도의처럼 긴장과 냉정을 모두어 본다.

평소에 가까이서 숨결을 나누곤 하던 바닷가에 서 있다
시야에는 바다가 저 멀리로 끝없이 펼쳐져 있고
나는 그 광활하고 푸르고 거대한 대양의 한 분신이 된다.

연약하고 가냘픈 몸매로 저처럼 거대하게 쿵쾅거리며 굴러오는 파도 더미의 흰 물거품이 되고
엄청나게 부풀어 오르곤 하는 파도의 산꼭대기를 정복한 정복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막혔던 가슴이 활짝 트여지고 답답하고 지루하던 마음이
얼마간은 누그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만족할 수만은 없다.
파도 더미의 흰 거품이 되고
파도의 산꼭대기에 올라선 정복자이긴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그 광활하고 넓고 깊은 대양을 딛고 마치 운동장을 뜀박질하듯
그렇게 달려보고 싶다는 욕심만이지 아무래도 실제로는 아닌 것이
아무래도 바다라고 하는 대자연에 관해서는 외면할 생각이 안 난다.

바다는 우리를 포용해주고 용서해주고 희망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바다로 향하는 염원은 끝없이 보이지 않는 푸르름의 연속처럼 한이 없고
우리 가족이나 친지 중 그 누구 한 사람이라도 바다에 나가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커져가는 염원을 누릴 길 없는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바다와 무관하지는 않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강렬한 불빛을 밤의 수로 위로 내보내던 등대의
오륙도 섬이 아름답게 물 위에 떠 있는 부산에서 자랐다

바다에로 향한 떨어질 수 없는 한 커다란 인연을 타고났다고 생각을 굳혀 버렸던 것이다.

산 보다 더큰 외항선이 함내 가득히 떠 있고
거대한 규모의 조선소들이며
길게 이어져 있는 부두의 안벽들이며 방파제들이며
그리고 그 바깥으로 물에 조용히 잠겨져 있는 태평양의 바닷물에 씻기우고 있는 오륙도
그 오륙도가 그때의 내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이다.

저 오륙도를 넘어서면 바다는 한없이 펼쳐져 있을 것이고
그 해면 위로 얼마든지 달려나갈수가 있을 것이었다.

찌푸른 바닷물은 어딜 가도 같았고
똑같은 모양새로 넘실대고 있었으며
내 숨 쉬며 살아가는 동안 원토록 배경으로 글을 쓰고 찬미하며
흡수되어 동화되고 싶다.

대양을 항해하고 돌아온 어떤 항해가들에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대양은 넓고 깊고 광활하지만
그러나 그 때문으로 대양은 우리들이 느끼는 그대로 다양한 변화를 갖는다고 한다.

산과 같은 거대한 파도가 있고
수만 톤이나 되는 큰 배를 파곡에 집어넣으면
얼핏 물속으로 끌려들어 갔지나 않나 싶게 숨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었고
그러나 그 파도가 한번 잠들기로 한다면 바다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맑고 잔잔하기가 면경 같다고 했다.

그 엄청난 변화를 안고 있는 바다에 그러기 때문에 마음이 쏠리는 것이다.
파가 일고 노도가 점령군처럼 밀려오고 난 그 뒤의 거울같은 해면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나의 마음을 비춰보고 그 대양의 물속에 나
나의 알몸을 집어 던져 보고 싶은 것이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그러면 거기에서 어떻게 비추이게 될까?

그 해면에 내 얼굴이 한껏 맑아지고, 그리고 그 담궜던 내 온 몸뚱이가 화사한 여름 풀포기처럼
향기를 머금고 거기에서 나의 가슴은 더없이 맑고 희망에 부풀고 알차며
토실토실한 저 영원의 진리를 감지할 수 있지나 않을까

그처럼 살려고
그리고 아름다워지고 싶다.

모래알들이 가늘게 빛나는 백사장에서 나는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갈매기들이 가까운 바위섬을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나는 그저 그 바다를 바라볼 뿐이다.

저 곳에 한 번 빠지면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사랑하는 친구들을 남기고 시작도 끝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리라
그곳은 평화로우리라

수족관처럼 물방울이 피어오르고 물고기들이 천천히 유영하겠지
바다로 와서 바다로 돌아가는 우리들은 결국은 흐르는 연습을 하는 것만 같았다.

많은 음악가들이 바다를 노래하고,
많은 화가들이 바다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많은 시인들이 바다를 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바다 동물인 것이다.
모든 생물의 근원지는 바다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바다는 모든 것을 품고 있다.

끝을 알수 없는 바다의 가슴속엔 모든 것이 숨 쉬고 있다.

밤은 깊은데
바다 위 달은 더 한 층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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