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수의 이야기

대한민국 마도로스 1세대인 신영수의 ‘마도로스의 삶과 人生’을 통해 바다를 유영하는 마도로스의 세상을 품은 진실한 삶과 인생을 엿본다. 신영수는 부산 출생으로 5대양을 다니며 세월이란 그것을 보내는 장소에 따라 전혀 그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괴로움과 슬픔도, 그리움과 미움도, 노도가 포효하는 바다도, 시간이 흘러가면 거울 같은 해변으로 변하는 것 같이, 시간이란 명약으로 치유시키는 사나이들, 그 이름 마도로스! 작가 신영수의 지나온 삶을 통해 대한민국 마도로스 1세대의 바다에서의 역동적인 모습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해운대 백사장에서 일어난 일

(제공=픽사베이)
(제공=픽사베이)

노래하는 갈매기와 해조음이 조화를 이루는 해운대 백사장을 걸어본다.
멈춘 듯 흐르는 바다노래를 들으며 무언가를 생각해 본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꽤 유명세를 떨쳤던 이들도
누군가와 진하게 사랑 한 번 못해본 이들도
모두 저마다의 죄를 씻어 내려고 찾아왔을지도 모를 이곳
이곳에 오면 바다의 포용력에 모든 시름을 잊고자 아니면 씻어내고자 함 이런가?

나 또한 지금 이 곳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모두들 바다를 닮아 서두르는 법이 없다
오래된 괘종시계의 침묵에 각각의 시간은 잊혀진 것일까?
그전에 누렸던 화려한 기억
혹은 어두운 시간들
모두 파도에 묻히기를 희망 하지는 않겠지
모두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디카를 꺼내든다
아니면 핸폰을 꺼내들고 갖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빽빽하게 둘러쳐진 모래알을 배경 삼아 한 발짝씩 물러서며 셔터를 누른다.

누구는 입을 크게 벌려 함박웃음을 짓고
또 누구는 세상을 조롱하듯 얇게 희미한 웃음을 띄우고
어쩌면 동심으로 돌아간 것도 같고
하나둘 보이지 않는 질서로 그들은 예상된 일인 것처럼
스스로의 자리에서 어색해 하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모래성의 주인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도
바다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언어와 행동들 모두가 창조하는 마술사처럼 말이다
바다 내음이 갑자기 허기진 배를 만지게 한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나보다

(제공=픽사베이)
(제공=픽사베이)

비릿한 바다 내음
신선하고 풋풋한 해초 내음
사랑의 단맛을 풍기는 의식의 냄새
어린 아기를 동반한 천진무구한 모유의 냄새
딱딱한 술잔을 기웃거리는 미풍진 세상의 소주냄새
희망과 꿈을 소망하는 염원의 냄새
종류마다 다른 다양한 메뉴의 냄새가 이 해운대 바닷가에서 풍겨나온다.
이 해운대 백사장 바닷가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천명의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일까?
불현듯 나는 노래하는 바다를 보았다.

자신의 손이 악기인양 파도 속에 두발을 묻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내가 선 자리에서 비껴 내가 서 있던 공간을 보았다
모래 속에 파묻힌 선명한 나의 발자욱
그렇지 않은가?

삶은 꼭 저만치 비껴 서 있고
그 속에 내 영혼이 도사리고 있고
험난하게 쌓아올린 허망된 나의 살아온 역사
그리고 바다에 대한 내 열정을 뒤흔들었던 아픔들
지금 바닷가에서 초라하게 서 있는 아니 뒤섞여 있는
내가 아끼는 바다가 이런 모든 것을 치유해 주고
마음의 평안을 그려주는 풍경이라면 좋으련만
바다 소리에 나의 상상의 나래를 접는다.

(제공=픽사베이)
(제공=픽사베이)

외떨어진 인생의 바람이 일고 낭랑한 떨림이 없는 갈매기의 아름다운 선율로
나를 반겨주었으면 하면서
나는 노래하는 바다와 악수를 하고 싶다
바디는 아마도 자신이 커다란 악기인줄 아는가 보다
박수를 치고, 기타를 치고
어떨 땐 마구잡이 주먹질을 하며
촌 어부의 생을 업어가기도 하고
또 화가 나면 뱃님들을 파도로 마구 두들겨 패기도 하고
자기를 어여삐 해주는 시인이나 화가를 만나면
수줍은 처녀처럼 너울 속에 자신을 감추고 --

예상치 못하는 우리네 삶에 비유할 순 없지만
상황 안에서 상황 밖으로 비집고 일어서야 했던 많은 날들의 나처럼
스스로 각본 안에 갇혀 연출되었던 지난 일들이 생각이 난다
구성이 잘 못되어 모든 결정의 시점이 잘 못되었던 혼란스러웠던 시간들도 생각이 난다.

상투적이고 군데군데 보이지 않던 내 삶의 거짓이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제 내가 믿고 고집했던 허위들을
그래서 지금 이 해운대 백사장에서 모두모두 씻기어 가기만을 바라고 찾아온 것일까?

노래하는 바다는 나를 이곳에 주저앉히고 만다.
일어설 생각이 없다
거역할 생각이 없다
바다의 웃음과 노래는 때론 내 인생에 큰 위안이 되곤 했으니까
아프기도 했고
상처를 주기도 했고
그리고 즐겁게 해주기도 했고
행복을 누리기도 했던 심연의 바다가
나를 오늘 이상한 바다 속을 헤매게 하고 마는 구나.

단지 바다를 좋아하고
그렇다고 지천명의 나이에 바다가 품고 있는 모든 것들의 출처를 헤집어 볼 생각은 없다.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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