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수의 이야기

대한민국 마도로스 1세대인 신영수의 ‘마도로스의 삶과 人生’을 통해 바다를 유영하는 마도로스의 세상을 품은 진실한 삶과 인생을 엿본다. 신영수는 부산 출생으로 5대양을 다니며 세월이란 그것을 보내는 장소에 따라 전혀 그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괴로움과 슬픔도, 그리움과 미움도, 노도가 포효하는 바다도, 시간이 흘러가면 거울 같은 해변으로 변하는 것 같이, 시간이란 명약으로 치유시키는 사나이들, 그 이름 마도로스! 작가 신영수의 지나온 삶을 통해 대한민국 마도로스 1세대의 바다에서의 역동적인 모습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외로운 선장의 선택(1)

(출처=페이스북 캡처)
(출처=페이스북 캡처)

아남바스 제도에 설치되어 있는 망가이 등대와 30마일 떨어진 오후시간 
난민들이 모두 저녁 식사를 끝마치자
여태껏 영어를 사용하며 우리와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던 여인을 불렀다
말을 꺼내기가 무척 난감했다
그러나 약속대로 외로운 결정을 통보해야만 했다
"내일 본선은 싱가포르에 입항합니다.
당신들로 인해 일정시간대로 입항을 할 수는 없으나
그것은 어떡하든 내가 처리 할 테니 지금부터 조용히 행동에 옮기도록 도와주십시오."


여인은 울먹이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연신 절을 한다
구조 시작 전 나는 여인과 중대한 약속을 했었다.
그것은 인권에 관한 또한 인간 본연의 도리로 당신들을 도울 테니
당신 또한 우리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와 달라
환자는 응급 치료 시켜주고 보트피플의 생활지원을 최대한 도와주며
육지나 섬 가까이 최대한 접근해서 이별을 하겠다는 약속 하에
나는 본선 선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인간의 도리를 다 했던 것이다.
지금부터 구조작전을 옮겨 적어본다
이글을 쓰기 전에 밝혀 두고자 한다.

이글은 무려 19년 전 베트남 전쟁 당시의 일이며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라도 미리 차단하고자 본인은
선명, 선원이름, 구조인 원, 신문, 항해일기, 일시, 등을 모두 가명으로
산문형식으로 기술한다.
다만 흥미본위주로 편집하여 남기는 그냥 추억여행 일뿐이다!

(출처=구글)
(출처=구글)

목선 갑판에는
가죽만 붙은 얼굴들이 시커멓게 타가지고 황망스레 바라보며 손을 흔들더니
이마저 힘에 겹다는 듯 흔들던 손을 내려 버린다.
이들은 마치 눈을 뜨기조차도 힘겹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멀건이 쳐다보고만 있는 것이다.

한 남자가 간신히 일어나 난간을 짚으며 걸어 나오더니
누런 이빨을 내놓고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지만
말소리는 전혀 나오질 않고
하얗게 말라있는 입술만이 약간 움직일 뿐이다.

목선과 거의 닿을 듯 말 듯 한 근소한 차이를 두고 타력만으로 조정하며 고함을 질렀다.
목선과의 거리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지자 사다리에 매달려 있던
부원 3명이 동시에 뛰어내려
늘어뜨려 놓은 로프를 잡아 재빨리 목선에 묶었다
묶여진 로프가 팽팽해지자 뒤로 쳐지던 목선이 본선의 현측에 닿음과 동시에 그 충격으로 인해 요동친다.

앉은 채로 멀건이 보고 있던 남자와 여자들이 갑판위로 나뒹굼과 동시에
난간에 서 있던 남자의 몸뚱아리도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진다.
나는 흠칫 놀라며 비 오듯이 땀을 흘렸다
이들은 더 이상 일어날 기력도 없다는 듯 내동댕이쳐진 채로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다.

대형 철선인 본선이 아무리 타력이 없는 정지된 상태라 할지라도
금방이라도 썩어 내릴 듯 한 목선에 슬쩍 스치기만 해도 순식간에 동강이 나버리거나 튕기어져 전복되어 버릴 것이 뻔한 이치이기에 굳어버릴 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목선 갑판으로 내려간 항해사와 부원들은 무슨 일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 하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다.
갑판에는 빈 식기들이 붉은 황토색을 뛴 채 멋대로 나뒹굴고
물을 담아 놓은 듯한 빈 드럼통은 밑바닥까지 말라붙어
뿌리도 없는 벌건 녹이 이끼처럼 피어있다

생선 섞는 냄새와 같은 고약한 냄새가 온통 갑판을 뒤덮고 있으며
걸레와 다름없는 옷가지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한쪽에는 쏟아놓은 배설물들이 바짝 달라붙어 굳어 있다.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겨우 열 살이 될까 말까 한 어린애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기진맥진 한 채로 본선을 바라보고 있다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하얗게 말라버린 입술을 움직일 줄도 모르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멀건히 보고만 있는 것이다.

이들의 눈동자는 생의 환희보다도 무미건조한
미리 체념해버린 듯한 색채를 더 짙게 내 풍기고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인 이런 일을 너무나도 많이 겪어온 경험자의 완고한 고집 같은 것처럼.

이들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있던 선원들은 이들이 무척이나 심한 탈수증으로 목말라 있음을 뒤늦게야 알아차리고는 누구의 오더도 없이 각기 식당으로 뛰어가
양손에 물통을 움켜쥐고 달려 나왔다.
날라 온 물통은 즉시 로프에 묶여 목선으로 내려갔다

에게 다가가 첫 번째 물통을 받아든 항해사가 매달려 잇는 컵을 벗겨들고 죽은 듯이 누워있는 어린 소녀 무릎을 꿇더니 조심스럽게 머리를 안아들고 컵 가득히 물을 떠서 입술에 대자 보일 듯 말 듯 한 눈웃음을 희미하게 지으며 하얗게 말라있는 입술을 힘겹게 움직인다.

두 번째로 내려온 물통을 받아든 부원이 캡을 벗기고 있는데
앉은 채로 보고만 있던 가죽만 남은 어른들이 눈빛을 번뜩임과 동시에
일제히 덤벼드는 바람에 물통은 여지없이 갑판위로 엎어져 버렸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멀건히 앉아있던 이들의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굶주린 짐승의 모습처음
소름이 끼치고도 남을 정도였다

남자와 여자들은 갑판위로 흘러내린 물을 향해 일제히 몸을 굽히면서 짐승처럼 핥기 시작한다.
마치 물 근처로 뚫고 들어오지 못하고 뒤에서만 바동대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 로프에 매달려 내려오는 물통을 한꺼번에 낚아채버리자 물은 대번에 공중에서 쏟아져 버린다.
이들은 머리위로 쏟아져 버린 물을 손으로 받아 마시고
다시 갑판으로 엎드려 핥아 먹는다

고함소리는 고사하고 한마디 말도 들려오지 않는 침묵의 아수라장속에서
누더기를 걸친 남녀의 몸뚱이들이 얽히고 설켜 뒤범벅이 되어 있다.
쏟아진 물을 미친 듯이 달려들어 핥아먹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짐승의 모습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위에서는 계속 물통을 내려 보내도
제대로 내려간 물통은 하나도 없었다.

미처 갑판에 닿기도 전에 갈고리와 같은 앙상한 수 십 개의 손들에 의해
물통은 사정없이 엎어져 버리고 이들은 다시 쏟아져버린 물을 향해 감판위로 엎드려 맹렬한 기세로 핥아먹는 것이었다.
윙브릿지에서 보고 있는 나와 갑판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선원들은 아무런 말도 않고 그저 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오직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속 물통을 내려주는 일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온통 물을 뒤집어쓴 부원들은 아예 물통받길 포기해 버린 듯
한쪽으로 비켜선 채 갑판을 핥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때 모두의 시선에서 벗어난
겨우 열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사내애가 회색빛이 감돌만치 하얗게 말라버린 조그만 혀로 마른 입술을 두어 번 빨면서 순간적으로 눈동자를 반짝이더니
나뭇가지와 같은 앙상한 손을 움직여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미처 일어서지도 못한 채 무릎걸음으로 기어 나오더니 엉켜있는 어른들 속으로 파고들 엄두도 못 내겠다는 듯이
잠시 무릎걸음을 멈추자
마치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잠자코 있던 목선이 약간 기우뚱거림과
동시에 사내애의 몸뚱아리는 맥없이 갑판위로 나뒹굴어 진다
갑판에 내동댕이쳐진 사내에는 더 이상 일어나려 하지도 않은 채
나뒹굴어진 그대로 축축해져 있는 갑판을 손바닥으로 더듬지만
손아귀에는 아무것도 담겨지질 않는다.

손가락 끝에 간신히 묻어 나온 습기를 힘겹게 움켜지고 입으로 가져가 빨아보지만
뜨거운 태양이 그것마저도 사정없이 빼앗아 버린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사내에는 아예 얼굴을 갑판에 대고 하얀 혀로 빨아보지만
어른들이 핥고 지나가버린 뒤라 사내의 혀는 아무런 습기도 얻어내질 못한다.
말라버린 하얀 혀와 같이 점차로 갑판위도 말라만 가고 있다
두어간 떨어진 뒤에는 갑판을 앓고 있는 어른들의 혓바닥소리가 폭풍을 이루지만
조그만 혀는 점점 더 말라만 가고 있는 것이다

마를 대로 말라버린 나뭇결을 아무리 핥아 보아도 습기 한 조각 얻어내지 못한 조그마한 혀는 더 이상 움직이질 않는다.
이젠 머리를 쳐들고 있을 기력마저도 태양에 뺏겨버린 양 조그마한 머리가 혓바닥 대신 갑판 위에 떨어짐과 동시에
눈마저 감기어져 버리지만 어른들은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흘러내린 물을 엎느라고 정신들이 없어서인지

본선에서 바라보고 있던 선원들이 웅성거리자 내려와 있던 부원이 뒤늦게야
사내애를 발견하고 한걸음에 뛰어간다.
일어날 기력조차도 없는 어린애들에게 물을 먹이고 있던 항해사 곁으로
사내애를 안고 간 부원들이
양손으로 물을 떠서 입술에 흘러 보내자 뒤늦게야 습기의 감촉을 느낀 조그마한 허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두 명의 부원이 번갈아 가면서 손바닥으로 물을 떠
사내애의 목적을 축축이 적셔주자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뜨고는 올려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뒤늦게 찾은 포만감과 만족감이 조그마한 혀끝에서 방울지다가 목적으로 내려간다.
어린애들에게 물을 먹여주고 난 항해사는 어린애들 머리맡에 잠자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에게도 컵 가득히 물을 떠서 건넨다.
한쪽 갑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젊은 여자는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안고 단숨에 마셔버린다
세 컵째 물을 받아 마시고 난 여자는 마치 환상 속을 헤매는 것처럼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니
바로 곁에 누워있는 어린 소녀의 손을 움켜쥐고는 굵은 눈물방울을 흘러내린다.
가만히 보고만 있던 항해사가 나직이 영어로 묻는다.

"어디서 왔습니까?"
항해사의 물음에 대답을 안 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던 여자는
한참만에야 신음 소리와 같은 목소리로 짤막하게 말했다
" 베트남 ---
하고는 누워있는 소녀의 가슴으로 얼굴을 묻어 버린다.
엎드린 채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과 눈만 뜬 채로
기력을 못 찾고 있는 어린애들
그리고 짐승처럼 갑판을 핥고 있는 가죽만 남은 남녀의 모습들을
나는 갑판으로 내려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당장 어떻게 해야겠다는 판단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먹고 싶을 만큼 실컷 물을 핥아먹은 남자와 여자들은 머리에서부터
발목까지 흠뻑 젖은 채로
더 이상 갑판을 핥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본선을 올려다본다.
이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물통을 받아든 부원이
앉아있는 이들의 한 중간에 가득 찬 물통을 가져다주어도 더 이상 달려들지도 않는다.

----- 구조의 망설임 -----
"영어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게"
"그리고 어디서 왔는가도 알아보게 "
' 베트남에서 온 난민들 입니다"
" 영어를 알아들은 여자가 있습니다."
하고는 엎드린 채로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젊은 여자를 눈으로 가리킨다.
모두들 베트남이라는 말에 나를 위시한 모든 선원들은

조난선이라고 느꼈을 때의 두려움보다도 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곤혹스러워 했다.
흔히들 말하는 기관 고장으로 표류중인 아사직전의 보트피플을 만난 것이다.

남지나 해상에서 표류중인 난민들을 발견한 선장들은 아예 이들을 못 본 채 그대로 팽개쳐 버리고 유유하게 사라져 버리는 선박들 간의 하나의 묵계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각 나라 선주들은 난민을 발견할시 구조해서 데리고 오라기보다는
구조해서 데리고 올 경우 문책 하겠다는
아예 골치 아픈 일을 만들지 말라는 식으로 암호와 같은 비밀스러운 전문을 보내오기도 할 때인 것이다.
모른 채 통과 하는 게 다반사였다.

특히나 본선은 이란으로 항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인해 상당히 위험항구로 알려진 입항하길 꺼리 끼는 항구였다.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을 거쳐 이란 항구로 입항하는 비무장의 일반 상선들을
이라크 공군기와 미사일 기지에서는 그대로 내 버려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를 공격하는데 쓰여질 물자를 싣고 이란 항구로 입항하는 화물선들을 무조건 공격하여 침몰시키거나 혹은 항행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될지도 모를 위험 항구에 입항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중간 기항지인 싱가포르항을 향해 항해 중 본선은 이 보트피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본선의 우렁찬 기적 소리에 놀라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하얀 갈매기가
본선과 목선의 주위를 뱅글뱅글 맴 돌고 있다.
마치 춤이라도 주듯이
유난히도 하얀 깃털을 반짝 반짝 빛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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