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종민] 광복의 달을 맞아 생각해 본다. 이웃 나라 일본은 가깝고도 멀기만 한 나라다. 서로 간 멀게 느껴지지만 가까운 나라 사이임엔 틀림없다.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양국은 고대부터 인연이 깊게 이어져 왔다(악연도 포함).

박종민 수필가/ 시인
박종민 수필가/ 시인

36년간의 일제강점기 핍박과 온갖 수탈을 겪어온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광복 후 한 일 양국은 폭넓은 친선 교류에 큰 진전을 이뤄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도 일본의 문화체험과 문물견학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필자는 연 60여 일에 걸쳐 세 차례나 일본 전역 구석구석을 도시 농어촌 불문하고 방문하며 문화적인 충격을 크게 받았다. 본받아 배울 점이 꽤 많이 있음을 인지했다. 친절함 근면함 아끼며 절약하는 검소한 정신에 놀랐고 비교적 풍족한 생활 속에서도 몸에 밴 내핍정신에 깨달은 바 크다.

일본은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에서 패망하여 전역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던 나라다. 그런 그들이 불과 반세기 만에 빠른 경제회복을 이뤄냈다. 패전 후 자원이 고갈됐던 국토에서 내핍정신을 생활화한 국민정신이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 됐으리라. 폐허를 딛고 세계 제2~3의 경제 대국을 만든 민족이다.

그들은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戰犯國家)라는 오명과 전장의 그늘을 씻어내려고 지금도 발버둥 치고 있다. 최근 치른 참의원 선거 결과를 보자. 예상대로 우파들이 득세했다. 일본의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에 다가와 있다. ‘평화헌법 개정, 전쟁할 수 있는 나라’라는 섬뜩한 말들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금방이라도 개헌을 추진할 태세다. 전쟁의 참상과 반인륜적인 행위들을 잊어버리기라도 했나? 아베 전 총리의 사망사고 후 더욱 똘똘 뭉친 우파정객들은 본격적으로 이슈를 선점하면서 평화헌법 개정을 가시화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2차대전 당시만 해도 기세가 등등하던 일본이다.

섬나라에서 한반도를 거쳐 중국대륙과 동남아를 향해 파죽지세의 전과를 몰고 가던 전쟁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에 놀라며 항복하게 됐다. 망국과 파국을 맞아 “노 모아 히로시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냈다. 수많은 인명의 살상과 폐허로 변한 국토를 보면서 이 이상은 히로시마의 비극은 있어서는 안 된다. 는 메시지가 아닌가!

본시 일본은 옛 삼국시대부터 백제의 문물이 전수되면서 한반도의 문화가 그대로 발전되고 발달한 나라이다. 그랬던 그들이 오랑캐 근성으로 근대조선, 우리 대한민국을 침략해 왔던 거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듯이 일제가 자행한 침탈과 핍박의 긴 세월도 1945년 8월 15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광복과 함께 우리는 회생했다. 싹 쓰리 침탈해간 자원의 고갈에 설상가상 이어진 6.25 전쟁의 잿더미 상흔을 딛고 일어났다. 세계10위 권 안에 드는 명실상부한 경제 대국이 된 것이다. k-팝 드라마 k-컬쳐가 세계를 휩쓸면서 한국문화에 열광하는 이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의 혐한(嫌韓) 시비는 여전하다. 반성할 줄을 모른다.

저런 엉터리가 없다.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면서 늘름대고 있다. 조선통신사의 길을 떠 올려보라. 조선의 문물을 그대로 전해줬던 조선통신사 길이다. 우리가 선도자고 지도자다. 이젠 꿀릴 것이 하나도 없다. 국민소득 3만5천 불의 나라가 됐다. 바짝 추월해오는 우릴 보며 저들이 불안해한다. 저들과 아옹다옹 싸울 필요가 없다.

극일(克日)이다. 극복하여 앞서가는 것이다. 우리 정치권의 인사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친일파 프레임을 씌워 헐뜯고 비난하기에 열중하면 열중할수록 도움 될 게 없다. 죽창가(竹槍歌)나 불러대며 목소리만 높일 일이 아니다. 극일은 이미 진전되고 있다. 긍지를 가지고 힘내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