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대국민 사과문 ·· 감옥 안 가려고 “사과 아닌 사기”
‘이재용’ 대국민 사과문 ·· 감옥 안 가려고 “사과 아닌 사기”
  • 박효영 기자
  • 승인 2020.05.07 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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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심 앞둔 상황
온갖 불법의 승계 문제
노동 문제는 왜 김용희 언급조차 안 하나
박용진의 요구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불법 경영권 승계와 노동조합 문제에 대해서 직접 소회를 밝혔다. 대한민국 최대 기업의 총수가 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뇌물죄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감옥에 갈 수도 있는데 안 가고 싶기 때문이다. 구속 수감생활을 1년 해봤는데 절대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6일 15시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사과문을 읽어내려 갔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부회장은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다. 오히려 실망을 안겨드리고 심려를 끼쳐드리기도 했다”며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있었다.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이 모든 것은 저희의 부족함 때문이다. 나의 잘못이다.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사실 삼성과 이 부회장 일가의 범죄행위는 철저히 분리돼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 삼성에 종사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이 부회장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사과문 곳곳에서 “나와 삼성”이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했다. 

이 부회장은 이미 2019년 8월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따라 86억원 규모의 뇌물 사범으로 인정됐다. 불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을 움직여야 했고 그 과정에서 뇌물죄를 범했다. 

이 부회장과 최고위 측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일가에 뇌물을 건넸다. 대법원은 실형 선고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시켰다. 하지만 파기환송심을 맡은 정준영 부장판사(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작년 10월 열린 첫 공판에서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며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에 대해 사후적 행동을 고려하겠다고 선언했다. 

정 판사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같은 경영 혁신 노력 △준법감시제도 도입 △재벌체제의 부작용 해소 등을 주문했다. 그의 일환으로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감시위)가 탄생했는데 법원이 피고인의 유무죄만 가려 판결하지 않고 사후적 행동 변화를 조건으로 형량에 영향을 미치려는 모양새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감시위는 3월11일 이 부회장을 비롯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7개사에 권고문을 보냈다. 그 내용은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 소통에 대한 것이었다. 나아가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라고 권고했다. 

이 부회장은 단상 옆으로 나와 두 번 고개를 숙였다. 경영권 승계와 노조 파괴 문제 등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언급한 뒤였다.

사과하는 이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 부회장은 “그동안 나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며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나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다.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리겠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에버랜드 땅값 부풀리기 △삼성SDS 등도 있지만 핵심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최순실 일가와의 뇌물관계다. 가장 큰 대목은 언급 자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법적 싸움에서 불리한 소지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나아가 이 부회장은 “내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며 “오래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다. 경영 환경도 결코 녹록치 않은 데다가 나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이후의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도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신분 사회가 아닌데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는 것 자체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상식이다. 상속을 받더라도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게 현대 국가의 상식이다. 재벌 대기업의 전통이 있는 한국에서도 LG, 오뚜기, 교보그룹 등 후임 총수가 수천억원의 상속세를 꼼수없이 납부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1994년 즈음 부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61억4000만원을 증여받았을 때 납부한 증여세 16억원으로 시가총액 294조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의 총수 자리에 올랐다. 

2018년 5월 삼성전자서비스 최 전 전무가 구속되는 등 삼성의 노조 파괴 행태는 법원의 심판을 받았다. 2019년 12월 법원은 노조 와해 혐의로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목장균 전 삼성전자 인사지원그룹장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 등 7명을 법정 구속시켰고 피고인 26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 했다. 최근에는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 그래서 건전한 노사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삼성은 선대 총수인 故 이병철 회장 때부터 무노조 경영을 표방했다. 헌법에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삼성 총수 일가의 헌법 위에 군림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조직적인 범죄행위들이 빈번했다. 노조 탄압이 대표적이고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의 직업병 사태 등도 모두 삼성의 그릇된 노동관에서 비롯됐다.

삼성해고노동자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는 입장문을 내고 “(이 부회장의 사과문에)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삼성해고 노동자 김용희가 331일째 하늘(강남역 삼성 사옥 주변 철탑)에 있다. 김용희에게 사과하지 않고 누구에게 사과한다는 말인가”라며 “국제사회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노조를 설립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25년을 거리에서 싸우다 마침내 25미터 높이 0.5평의 쇠바구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런 그를 331일째 방치하고 있다. 이게 21세기에 가능한 일인가?”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이 부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한 현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임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오늘 이것은 사과가 아니라 사기”라며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 김용희씨라고 알고 있다. 근데 김용희씨에 대한 사과와 보상없이 피해를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 당사자가 누군지 얘기도 않고 삼성 본관 앞에 버젓이 자기 머리 위에 김용희씨가 있는데 그 사람을 언급하지 않고 피해자 사과를 운운하는 것은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임 교수는 “지금 이런 자세로 봐서는 그냥 사과문 하나로 면피하려는 것 아닌가 싶다. 삼성 노조 탄압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투쟁의 상징인 인물에 대한 언급없이 사과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앞으로도 삼성은 도저히 바뀔 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노동 3권을 헌법에서 파버려야 하는 판국이 된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면 헌법에서 노동 3권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거듭해서 임 교수는 “김용희씨의 고공농성은 대한민국의 수치다. 어디 시골에서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본의 가장 중심지인 강남사거리에서 330일을 사람이 저기 위에 올라가 있는데 그걸 내버려 두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가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현재 삼성해고노동자 공대위, 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 과천철거민대책위 등은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을 결성해서 함께 대응하고 있다. 공동투쟁은 감시위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감시위에 대해 사실상 이 부회장의 실형을 면해주기 위한 법원과 삼성의 꼼수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부회장은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와 견제가 그 본연의 역할”이라며 “기업 스스로가 볼 수 없는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할 것이다. 낮은 자세로 먼저 한 걸음 다가서겠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에 귀를 기울이겠다.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나부터 준법을 거듭 다짐하겠다.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나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다. 그 활동이 중단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임 교수는 김용희씨 문제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상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면피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임 교수는 “노조 문제를 이런 정도로 넘어간다면 승계도 나중에 당연히 말이 바뀔 것이다. 시민사회 감시나 언론 감시는 안 그러겠나?”라며 “25년간 피해 입은 당사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고 그냥 말로만 했다. 다른 것들은 피해 정도나 가시화 정도가 낮다. 그냥 훨씬 더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일축했다.

사과문에는 이 부회장의 포부도 담겨 있다. 마치 대권 도전 출사표와도 같은 현실 인식과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 부회장은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 가져온 내 소회를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2014년에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난 후 부족하지만 회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도 적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나는 지금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며 정 판사의 취지에 부합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삼성을 둘러싼 환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시장의 룰은 급변하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기업의 규모로 보나 IT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밑밥을 깔았다.

대내외적 환경이 엄중한 상황이라 이 부회장 본인의 부재는 절대 안 된다는 일종의 호소다. 

이 부회장은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절박한 위기의식”이라며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 그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고 나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삼성은 계속 삼성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파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희생하는 의료인과 여러 구성원 등을 거론하며)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법 잘 지키고 사회적인 부분을 신경쓸테니 감옥에 안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미리 작성한 사과문을 읽어내려간 이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삼성 저격수로 정평이 자자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변명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하는 도덕적 책임 회피와 법적 자기면죄부를 위한 구색맞추기식 사과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이어 “법적인 잘못을 도덕적인 문제로 치환해 두루뭉술하게 사과하는 일은 제대로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라며 “이 부회장은 앞으로 잘 하겠다는 허황된 약속보다 그동안 저지른 각종 편법, 탈법, 불법 행위를 해소하기 위한 계획을 제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제시한 불법 행위는 △삼성생명 공익재단을 통한 공익법인 사유화 문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법적 한도 초과분의 처분 문제 등 2가지다.

박 의원은 “현재 방치되고 있는 삼성의 경영권 관련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는 일이야 말로 제대로 책임지는 일”이라며 “12년 전 이건희 회장도 당시 특검의 수사결과에 따른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4조5000억원 규모의 차명계좌로 밝혀진 검은 돈에 대한 실명전환, 누락된 세금납부, 사회환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는 구두선언에 그쳤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 이 부회장의 발표문도 언제든지 휴지조각처럼 버려질 수 있는 구두선언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박 의원은 이 부회장의 사과문 발표 이후 3대 주체(법원/검찰/감시위)가 제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먼저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미국의 연방양형 기준을 언급하면서 준법감시기구를 설치하면 양형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회사에 대한 양형 기준이지 개인에 대한 양형 기준이 아니다. 이 부회장에게 오늘의 입장문 발표로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두 번째로는 “경영권 승계 과정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벌어진 삼성바이로직스 회계 조작 관련 검찰의 수사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범죄사실을 잘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는 “오늘 이 부회장의 입장문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옳다. 정확히 잘못을 이실직고 하지 않는 입장문은 사과가 아니다. 이 입장문을 그대로 받아준다면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면치 못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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