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의 우생마사] 살기위한 먹기와 먹기 위한 살기
[박종민의 우생마사] 살기위한 먹기와 먹기 위한 살기
  • 박종민
  • 승인 2018.03.27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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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마치 먹기 위해 사는 듯하다. 좋은 식재료에 특별한 음식을 골라서 먹으며 식도락을 즐기는 열풍이다.

지상파방송을 비롯한 여러 TV 라디오 등 방송매체가 좋은 먹거리와 유명 음식 소개 프로그램을 고정시간으로 배정운용하며 방송사간에 인기몰이 경쟁이 뜨겁다. 주부들만이 갖는 여유로운 황금시간대에 먹방 쿡방이 대세다.

그렇게 방송언론이 부추기고 유혹하니 많은 이들이 남녀노유불문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며 요리수업에 뛰어 들고 있다. 간단하고 단순한 라면 끓이기나 부침이나 지짐이 등의 간식 만들기 차원을 넘어 전문음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굽고 지지고 볶고 끓여내는 먹음직스런 음식이 TV화면이나 신문잡지에 비쳐나는 것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하며 입맛을 다시게 한다. 재료도 재료이려니와 음식을 만들고 다루는 솜씨나 기술도 다채롭고 특색이 있다.

우리고유의 전통요리에 새로운 때깔을 입히고 맛과 향을 내어 특별한 퓨전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등장하는 음식도 가지각색 풍성하게 넘쳐난다. 요리사가 인기직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너도나도 꿈꾸고 있다.  

  쌀이 남아돌아 걱정을 하고 소득이 없다며 농경지를 묵힌다. 시장에 농수축산물이 넘쳐나며 온갖 수입과일과 식재료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풍요로운 시대이다. 굶주림을 모르는 세대들이 맛 집을 찾아 이곳저곳 골라 다니며 식도락을 즐긴다.

이렇게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완전히 해소된 세태 속에서도 요즘 유명가수가 부르는 트로트노래곡조가 뇌리를 자극하고 있다. 심금을 울리는 ‘보릿고개’란 노래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옛날에 민생들의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시절의 실상이 그대로 전해진다. 우리선조들이 먹을거리가 없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때우며 허리띠를 졸라매야만했던 굶주림 속 시대적 정황이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노력을 다해도 생산소출이 없었던 때다.

농산물이든 수산물이든 식량자원이 제대로 거둬지질 않으니 먹을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겨울삼동을 곤궁하게 보내고 겨우겨우 맞이한 봄철엔 봄나물로 그럭저럭 지내다가 춘궁기에 접어든 시기, 보리이삭 팰 무렵부터 보리가 먹을 수 있게 익어나는 기간을 두고 ‘보릿고개’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배고픔 굶주림 배곯음에 탄식, 실로 먹고 살기 어려웠던 옛 시절의 애절한 하소연이며 곡조다. 이때는 살기위한 먹기, 살아남기 위한 먹기이었던 것이다.

  천지개벽(天地開闢)에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했던가? 불과 반세기만에 바야흐로 먹기 위해 사는, 먹기 위한 살기의 시대가 됐지 싶다. 가는 곳마다 시장상가거리에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소문난 맛 집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고 먹다 말고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가 곳곳에 쌓여있다. 먹다가 그냥 버리고 또 다른 걸 찾아 먹으며 버리고 또 버리고 마구 버려댄다. 이걸 식도락이라 자처하고 있다.

적당량을 맛있게 먹고 적정량을 깨끗하고 깔끔하게 먹으며 즐기면 되련만 그게 아니다. 양심(良心)이 있고 양식(良識)있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자기의 정체와 주체를 모르며 주제를 잊고 사는 듯하다.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과소비, 과잉소비이다. 아무리 먹기 위해 살아가는 시대라 한다더라도 이건 아니지 싶다. 언제부터 우리가 흥청망청 살아왔던가? 자숙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경제가 어렵다.

심란하다. 절약과 내핍을 강조해도 모자랄 판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따라 번 볼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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