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배의 장광설] 독설(毒舌)과 비판(批判)
[김경배의 장광설] 독설(毒舌)과 비판(批判)
  • 김경배 기자
  • 승인 2019.03.1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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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배 편집국장
김경배 편집국장

[중앙뉴스=김경배] 중국 삼국시대 천재로 불렸던 예형(禰衡)의 말로는 비극이었다.

예형은 중국 후한 말 인물로 자는 정평(正平)이며 청주(靑州) 평원군(平原郡) 반현(般縣) 사람이다. 조조(曹操)와 유표(劉表), 그리고 유표의 심복인 황조(黃祖)를 능멸하다 황조에게 처형된 인물이다. 

예형은 삼국지에서 가장 대표적인 독설가(毒舌家)로 묘사된다. 그는 건안칠자의 한명으로  공자의 20대 손인 북해 태수 공융(孔融)과 절친한 사이였다. 공융의 추천으로 조조에게 갔으나 예의를 갖추지 않고 무례한 언행을 계속하다 형주자사 유표에게 사자로 보내진다.

여기서도 예형은 그 특유의 독설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유표를 화나게 만들고 화가 난 유표가 그를 심복인 강하태수 황조에게 보냈지만 여기서도 독설을 멈추지 않고 퍼부어 결국 황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예형에 대한 역사의 평은 사지분별을 못하는 오만한 천재라기도 하고 무너져가는 한 왕실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였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가 그를 반겨주지 못했는지 몰라도 그의 행위는 미래에 대한 통찰과 설계가 없는 막가파식에 불과했다.

오히려 자신의 뛰어난 기재를 활용하여 자신이 뜻한바 일에 매진했더라면 역사는 어떠한 결과로 도출되었을지 한번쯤 가정을 해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독설로 유명한 이들이 꽤 있다. 독설은 종종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설은 상대에게 분노를 유발시킨다. 설령 독설이 보편타당성을 가져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독설은 언젠가 복수란 비극을 잉태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감정을 소유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독설은 그 정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표현 당사자가 한정되어 있을뿐더러 함부로 독설을 퍼붓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 대한 점잖은 충고나 아니면 비판을 통해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독설이 허용됨에도 독설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 때문이다. 이러한 배려와 예의 없이는 문제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역사와 학습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정치권이 시끌하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표현에 이어 ‘반민특위’ 발언으로 인해 국회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한 양상이다. 민주당과 한국당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으며 여기에 다른 야당들도 가세하는 모양새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으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그것이 자유롭게 표출될 때 민주주의에 한걸음 다가서는 것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나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인해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의 발언에는 그 책임이 따른다. 같은 편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지만 반대편에겐 그에 걸맞은 보복이나 앙갚음만 기억시킨다. 거대집단의 충돌은 그래서 위험하다. 건곤일척의 대치는 결국 파탄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에는 완충장치도 없다.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만 연상된다.

물론 독설과 비판의 구별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와 상관없이 상대방이 비판이 아닌 독설로 본다면 그것은 독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대표성을 가진 이가 의사를 표할 때에는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말이란 한번 내뱉으면 되물릴 수 없다. 누구나 독설을 내뱉을 수 있지만 그 결과가 독설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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