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배의 장광설] 단장(斷腸)과 서하지통(西河之痛)
[김경배의 장광설] 단장(斷腸)과 서하지통(西河之痛)
  • 김경배 기자
  • 승인 2019.04.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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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배 편집국장
김경배 편집국장

[중앙뉴스=김경배] 중국 5호 16국 시대 동진(東晉)의 정치가인 환온(桓溫, 312년 ~ 373년)은 군사적 성공을 배경으로 동진(東晉)을 좌지우지하며 황제의 자리까지 넘봤던 인물이다.

막강한 권력을 앞세운 환온의 힘에 위기감을 느낀 회계왕(會稽王) 사마도자(司馬道子)(동진의 제9대 황제 효무제(孝武帝)의 동생)가 북벌을 위해 창설된 북부군(北府軍)의 대장에 은호(殷浩)를 추천하여 환온의 대항마로 삼았다. 

하지만 은호는 후진(後秦)의 대장 요양(姚襄)에게 참패하고 환온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패장 은호를 탄핵해 실각시켰다. 실각당한 은호는 한온의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죽마고우란 고사성어는 환온이 은호를 실각시키던 날 "은호와 나는 소꿉친구로 죽말(竹馬)을 타며 노는 사이었지만 항상 그 녀석은 내가 타다버린 죽말을 주워서 노는 처지였지"라고 말했던 데서 유래했다 한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에는 사이가 좋은 어린 시절 친구란 뜻이지만 원래는 어디까지나 골목대장과 부하 같은 상하관계의 의미를 포함하는 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친구도 버릴 만큼 정치의 세계는 이처럼 비정하기만 하다.

하지만 환온이 단순히 이처럼 비정하기만 한 정치인이었다면 황제의 자리를 넘볼 만큼의 위치에는 올라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관련된 또 다른 고사중 단장(斷腸)이란 말이 있다. 

환온이 성한(成漢)을 정벌하러 촉(蜀)에 들어갈 때 환온의 부하 하나가 새끼 원숭이를 잡아 애완용으로 데려가고 있었는데 어미 원숭이가 강안(江岸)에서 울며 백여 리를 따라오다가 배 위에 뛰어 올랐으나 제 풀에 지쳐 죽었다 한다.

이에 어미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모두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환온은 크게 노하여 그 병사를 내쫓아 버리고 어미 원숭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세설신어(世設新語) 〈출면(黜免)〉》에 나오는데, 원숭이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졌다는 말에서 ‘단장’이 유래하여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큰 슬픔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환온이 단순히 군문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밝은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란 곡은 그동안 발표된 수많은 전쟁 관련 대중가요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작이다. 이 노래는 6.25 전쟁 때 북한군이 북으로 후퇴할 때 끌려가는 가족들을 보며 슬픈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이 노래에는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전쟁 중에 피난길에서 어린 딸을 잃은 아픔도 배어 있다 한다. 이 노래 제목의 단장도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가족을 잃은 아픔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어느새 세월호 참사 5주년을 맞이했다. 세월호 참사는 지난 2014년 4월16일 304명의 희생자를 낸 대규모 해상 사고다. 우리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일지라도 자식과 가족을 잃은 아픔을 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5년이나 지났지만 남겨진 자들에게는 아직까지 크나큰 고통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이처럼 대형 사고는 드물었다. 진상 규명 요구가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

일부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시선도 보낸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이웃이다. 남의 슬픔을 조롱하기 보다는 남겨진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자. 그리하여 그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 같이 호흡하기를 기원하자.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 있을 때 자식을 잃고 너무 슬피 운 나머지 소경이 되었다 한다. 이를 서하지통(西河之痛)이라고 한다. 가족을 잃고 아직까지 한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최소한 빈정대거나 비소(誹笑)하지는 말자.

그들의 아픔이 언젠가는 나의 아픔이 될 수도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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