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 박종민] 사람들이 더불어서 함께 살아나가는 삶에 과정 과정이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어쩌면 치열하게 다투며 경쟁해야 하는 게 당연하리라. 상대방을 밟고 올라서야 하고 경쟁자를 딛고 뛰어넘어 우뚝우뚝 서야 하며 따 돌려놔야 하니까 힘겨울 수밖엔 없다. 때로는 과감해야 하고 과격해야만 한다.

박종민 수필가/시인
박종민 수필가/시인

경쟁사회이고 모두가 경쟁자들이니까 뒤처지거나 낙오되면 인생 퇴물이 되고 만다. 특히 정치권이 유별나게 그러하다. 베일에 가려진 속속들이 내용을 알아낼 수 없겠지만, 매일같이 쏟아져나오는 언론매체의 기사를 보면 정치인들의 실상과 면목이 나타난다. 

 아니면 말고 식의 말 폭탄과 대책도 없는 포퓰리즘이 난무한다. 대중영합주의가 그럴싸하게 과대 포장되어 귀가 엷은 선량한 서민들에게 그대로 순순히 먹혀들어 간다. 과격한 막말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약(公約)이 아닌 공약(空約)을 남발하며 ‘사이다발언’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 낸 수준 낮은 언행에도 통하는 사람들 끼리끼리 영합하여 관심을 끌어모으며 집중조명을 받기도 한다.

결코 참신할 리가 없고 지역민이나 유권자들을 위해 순수할 리가 없다. 뿐만이 아니다. 당연히 모든 사안과 안건의 협의 과정 과정이 공정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워야만 하나, 이론과 이념의 성향에 따라서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며 유유상종한다.

마땅한 옳은 의견이나 의사임에도 상대방의 말은 거두절미하고 “아이돈 노우”다. 자신을 옳다고 우기며 남은 나쁘다고 한다. 아시타비(我是他非) 그 자체다. 먼저 한 번쯤이라도 반구제신(反求諸身)을 해야 하건만 전혀 독불장군(獨不將軍)에다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그러니 늘 여의도 전당이 시끄럽다. 진지한 토의나 토론이 될 리가 없다. 이들이 각 지역에서 주민의 뜻을 모아 그 옳고 그른 뜻을 바르게 전달하고 반영하는 민의를 대변하러 나온 나리님들이시다.  한 번쯤이라도 다른 나라의 진정한 의회주의자를 보자.

뚝심이 있고 지조가 굳건하기로 이름난 미 의회 상원의원(민주당 맨친)은 “타협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지 못한다”라고 날카롭게 목청을 높인 바 있다. 미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존경받고 있는 진정한 정치인이다. 정치는 세계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협치와 타협에 주안점을 둔다.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국가의 주권재민으로 시민에게 권리가 주어져 있다. 과연 우리나라 정치권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숙의(熟議)가 없다. 국회는 협치와 타협의 협상테이블인데도 쌍방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힘이 센 쪽 일방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반목질시에다 상대편을 무시하고 윽박지르며 꼬집으려는 막말에 말실수가 판을 친다.

 말실수는 영어로 혀의 미끄러짐과 뒤틀림의 뜻으로 ‘slip of the tongue’라 표현 표기한다. 정신과 육체가 합일되어 정상적으로 발설하는 혀와 입놀림이 아니란 얘기다. 막말에 말실수가 있은 뒤엔 그게 아니라며 핑계 대고 해명하려는 말장난이 따른다.

이때에도 말실수에 대한 진정한 의사표시나 사과의 말은 들어보기 어렵다. 이들의 말장난의 배후에는 철면피가 버티고 있다. 정치권에 정치인이라는 본래의 신사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안면몰수(顔面沒收)하고 거기다가 철판을 덧씌웠으니 말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번 보기 할까, 겁난다.

개인 간에 교류나 교분에도 마찬가지이다. 친교는 상대편과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데서부터 빛을 발하는 것이다. 존중 배려가 답이다. 욕심을 내려놔야 한다. 내게 필요하고 유익한 걸 얻으려면 무엇이 됐던 하나는 놔버려야 한다. 모두 다 틀어쥐려면 다 잃는 게 세상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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