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수필가/시인

[중앙뉴스= 박종민] 여름의 끝자락에 들어섰다. 열섬현상(heat island)이 이런 건가? 밤사이 땅이 눅눅하게 이슬에 푹 젖어 식을 만큼 식었건만 뿌옇게 연무가 낀 듯하고 푹푹 찌며 아침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정원을 내다본다.

샛노란 어사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담장에 산비둘기 한 쌍이 나란히 앉아 소곤소곤 여백을 즐기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일상 모습을 내려다보며 조롱하는 것만 같다. 층층나무와 목련이 널찍한 잎사귀를 깔아 내리며 축 처져있다.

무더위에 그만 많이 시달려 지쳤나 보다, 삶에 찌든 서민들처럼. 감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제법 굵어진 풋감이 땅바닥에 또르르 나뒹군다. 푸른 솔이 힘껏 기지개 켠다.

이런 게 철 따라 풍광이 바뀌고 변화하는 대자연의 어느 참모습이다. 쉼 없는 윤회의 철칙이며 정경이다. 이를 따라가는 게 인생 항로다. 사람이 이걸 비켜 갈 수는 없다. 순리에 그대로 좇아 흘러가야 한다. 흐르는 세월을 정체시키려 붙잡고 매달릴 수는 없다.

때론 시의적절(時宜適切) 쉬엄쉬엄 쉬면서 가자. 느긋하고 여유롭게 엉거주춤해도 된다. 그렇다! 더운 날씨엔 시원한 냉커피라면 좋으련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다. 따뜻하고 달달 한 커피 한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앉았다. 망중유한(忙中有閑)의 여유이다. 인생사 살아가는 일상을 더듬어가며 곰곰이 생각해본다. 차분하게 다소곳이 살아나가는 과정들을 하나하나씩 뇌여 본다.

따져 보니 살아온 날들 모두가 맑은 날 궂은날 바람 부는 날이 반복되며 교차하는 연속선상이었다. 하루는 흐리고 그다음 날은 맑았다가 다시 흐리고 또 다른 날들도 그렇게 이어졌다. 계절에 맞게 빛깔도 느낌도 냄새도 다른 맑은 날 궂은날 바람 불어대는 날들이었다.

대기권이 맑고 청명하다 해도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론 궂은날이었고 천둥 번개에 폭풍 폭우 몰아치는 날은 오히려 심신은 마냥 쾌청하고 편안하며 안온(安穩)한 때도 많았다. 여생도 그렇게 지속이 될 것이다. 사람의 일희일비(一喜一悲)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억지 부릴 게 없다. 발버둥 칠 것도 없다. 대자연에 의지하고 순응하면서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의식하는 정서에 맑고 궂음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겐 늘 좋은 날만 있을 수 없고 항상 궂은날만이 있는 게 아니다. 대기나 일기와도 관계가 없지 싶다. 맑은 날 궂은날을 가릴 게 없다. 생활 속에서 주어지는 그때마다 번민과 고뇌를 삭히고 새기는 수련의 일상이 인생 삶이리다. 스스로 사리(事理)를 인지하며 터득하여 정도(程道)를 따라야 하는 게 인생길이다.

좋은 날에 좋은 기분이라며 탐욕과 집착을 부리면 과오(過誤)를 낳는다. 명예나 명성 체면이나 위신 등등만을 의식하게 되면 만사는 근심덩어리가 된다. 한가로이 여유시간을 값지게 느끼며 즐기려 하는데도 빛이 바래고 의미가 퇴색된다. 골머리 아픈 번민과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다. 생각이 건전하고 심플(simple)하면 심연이 잔잔하고 편안하다.

갈수록 다양하고 다변해지는 세상사다. 다채로우며 변화무쌍한 인생 항로이다. 사람의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맑았다가 흐리고 개었다가 비바람 치는 날의 반복이다. 순리로 받아들이며 순응해가는 지혜와 자세에 따라 조화가 좌우된다. 살아가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터져 나곤 하는 것이 인간세계다.

울고불고 피가 터지도록 아웅다웅 다투며 싸움박질할 일들이 일쑤 벌어진다. 굳이 그리 살 필요는 없을 터다. 아집과 욕심, 자만과 야망, 원망과 이기심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한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양보 없는 치기(稚氣)를 버리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엔 언제나 늘 그렇게 맑고 궂고 비바람 불어치는 날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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