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종민] 홍시가 열렸다. 여기저기 감나무에 적갈색 혹은 적황색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그중에서도 제물에 함빡 잘 익어 말랑말랑하고 껍질이 만져 터지면 달콤한 과육이 군침을 자아내게 하는 감이 바로, 홍시이다.

박종민 수필가/시인
박종민 수필가/시인

늦가을 이맘때쯤이면 전국 어디를 가나 흔하디흔하게 볼 수 있는 풍광이다. 하지만 홍시가 열리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새봄에 감꽃이 필 무렵엔 감꽃을 매개체로 활동하는 나방들의 침입이 거세다. 이걸 막아내지 않으면 열매가 맺어 굵어가면서 그냥 떨어져 내린다.

이 시기부터 감나무를 관리하는 주인과 감나무가 함께 공조를 이뤄 열정을 다해가며 열매를 키워내야 한다. 농약 살포하는 것도 높은 나뭇가지는 쉽질 않다. 어떻게 했던지 감나무 자체가 이를 극복해내야 한다.

여름내 무더위와 몸이 타들어 가는 갈증 속의 그 혹독하기만 한 가뭄과 하늘이 구멍이라도 뻥 뚫린 듯 퍼부어대는 긴긴 장맛비를 두루두루 겪어내고 열린 홍시다. 힘겨운 역사(役事)의 성과물이다. 홍시가 달린 경관이 넉넉하고 풍요롭고 보기에도 좋다. 이처럼 홍시가 매달린 진풍경은 하늘을 찌를 듯이 드높이 솟은 수령이 꽤 오래된 감나무 묵은 가지 끝에 주저리주저리 매달린 게 제격이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때까치들이 감나무 높은 가지 사이를 맴돌며 홍시에 잔뜩 눈독 들이고 있다. 이 얼마나 감칠맛 나겠는가! 코발트 빛 하늘을 이고 달린 홍시가 가을빛에 반짝반짝 곱게 빛난다.

늦가을 풍경이 이처럼 청아하고 상큼하게 돋아나는 건 그야말로 가슴 속을 찡하게 적실 만큼의 낭만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유행가 ‘홍시가 열리면’이 절로 나오곤 한다. 국민가수라고 평하는 유명한 가수가 반세기(半世紀)의 세월이 넘도록 불러 히트 치며 국민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한 가요다.

효심을 담아 효성을 절절히 느끼게 하는 노래이다. 노랫말처럼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볼 때 어머님 생각이 난다. 어머님이 이 세상을 떠 나신지 30여 년이 넘었건만 이 순간에도 어머님을 떠올리는 건 무엇 때문일까? 어머님에게 받던 따뜻한 정과 무한의 사랑이리라. 어머님은 무엇보다도 홍시를 좋아하셨다. 누구보다도 더 홍시를 즐겨 잡수셨다.

그러면서도 당신께선 자식들 사랑에 가장 질이 나쁜 것만 골라 드시곤 기호품이 아닌 것처럼 싫은 척 달갑지 않은 얼굴을 하셨다. 가없는 어머님의 사랑의 자태이다. 나는 지금 그 시절 그 시각에 잠겨있다. 바지랑대기로 홍시를 골라 따내며 장대 끝 망태기에서 홍시를 끄집어내시는 어머님과 하하 호호 희희낙락하고 있다. 꿈일까, 환상일까? 내 상상 속의 현실이다.

일상이 복잡하고 고단할수록 옛날 추억 속의 모습과 이야기들은 꿈이 되어 나타나고 환상이 되어 나를 어루만져주고 있다. 예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풍작이 됐던, 흉작이 됐던 홍시가 열려 그걸 수확할 때 반드시 모두 다 따질 않고 몇과 남겨 놓는다는 무언의 규칙과 선례를 남겼다.

하늘과 땅에 감사하며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새들에게 먹이를 양보하는 예우다. 까치밥을 남겨 놓는 건 의례(儀禮)가 아닌 의례다. 날짐승 들짐승과의 정과 사랑을 나누며 공생하고 있음을 고마워하는 선행의식이다. 이런 정서를 오늘의 우리 신세대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 건지?

이제 대한민국은 상주인구 5,000만 명의 시대가 되었지만, 부모와 자식이 따로 떨어져 살아가는 세대 비율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감나무에 홍시가 열린 풍치와 풍경은 예와 다름이 없는 터다. 그러나 풍광에서 정서와 정감 낭만은 없는 판이다. 오로지 살아가기 바쁘고 버거운 젊은이들에게 효성과 효심을 느끼게 하는 애절한 유행가 가사나 곡조가 머리에 와 닿을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