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10일과 11일 새벽의 상황
예산안 3당 교섭단체 합의 못 해
4+1 공조 체제 수싸움 월등
패스트트랙 공조
한국당의 여론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512조 2504억원 규모의 2020년도 국가 예산안이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대안신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는 10일 21시를 넘긴 시각 본회의에서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재석 162명 중 찬성 156명, 반대 3명, 기권 3명이었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원안은 513조 4580억원이었지만 4+1 협의체는 여기서 1조 2075억원을 삭감했다. 9조749억원을 감액했고 7조8674억원을 증액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예산안 의결에 대해 한국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당초 9일 심재철 신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3당 교섭단체(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변화와혁신) 채널이 복원됐고 바로 맞교환 합의가 이뤄져 4+1 공조 체제에 균열이 날 것으로 보였지만 예산안을 놓고 3당이 끝내 타결을 보지 못 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전해철 민주당 의원, 이종배 한국당 의원, 지상욱 변혁 의원은 9일 15시부터 10일 저녁까지 수 차례 만나 줄다리기 협상을 이어갔지만 총선용 선심성 예산이라는 쟁점을 놓고 칼질하려는 야당과 지키려는 여당의 입장차가 너무 커서 도저히 타결에 이르지 못 했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민주당은 결국 한국당을 패싱하고 주말에 미리 성안해놓은 4+1 협의체의 예산안을 곧바로 상정하고 의결시켰다. 한국당은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할 수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다. 한국당은 예산 부수 법안들을 무더기로 상정해서 찬반 토론을 통해 사실상의 필리버스터 효과를 보려고 했지만 문 의장이 예산안을 부수 법안에 앞서 표결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 했다.

특히 한국당은 관행적으로 세수 관련 부수 법안을 먼저 통과시켜서 세입을 확정한 뒤 예산안이라는 세출을 확정해야 한다면서 강하게 항의했다. 기재부 출신으로 오랫동안 예산 업무를 담당해왔던 송언석 한국당 의원은 11일 0시가 넘은 시각 본회의 반대 토론에서 이런 취지를 어필하기 위해 목청을 높였다. 심 원내대표도 새벽 1시를 넘은 시각 반대 토론에 나서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해 맹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4+1 협의체에 대해 세금도둑이라는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아이러니하게도 1년 전 예산 정국 때는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세력 포함), 정의당 등 소수당 연합이 선거제도 개혁 요구와 예산안 처리를 연계하는 요구사항으로 인해 민주당과 한국당이 손을 잡고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거대 양당이 당시 교섭단체였던 바른미래당까지 패싱하고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회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예결위 조정소위원회 “소소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교섭단체 대표들이 밀실에서 속기록도 남기지 않고 국가 예산을 주물렀다. 

무엇보다 예산안을 국회에서 처리해야 하는 법정시한을 넘긴 이후에는 예결위의 권한이 사라지고 교섭단체의 정치적 협상 테이블로 넘어가게 된다. 

어찌됐든 한국당은 예산안 표결에 앞서 문 의장에게 격렬히 항의하고 비난을 퍼부었지만 통과를 저지시키진 못 했다. 한국당은 자체적으로 500조원 이하로 구성해서 예산안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기재부가 동의하지 않아서 바로 폐기됐다. 현행법상 원칙적으로 정부는 예산안을 편성하고 국회는 심의하고 의결하게 돼 있다. 국회가 예산을 증액하거나 신설하려면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한국당은 예산안이 통과된 뒤에도 국회에서 비상 대기하면서 자체적으로 준비해놓은 예산 부수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켰지만 모두 부결됐다. 본회의는 바른미래당 당권파 소속 주승용 국회부의장의 진행으로 자정을 넘어 11일 새벽까지 정회와 속개를 거치면서 지속됐다. 본회의가 산회된 시간은 정확히 새벽 1시54분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심재철 원내대표는 선출되자마자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정국에 맞닥뜨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원래 매년 연말마다 예산 정국 때는 여야가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는 현안과 연계돼 정치적 함수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2019년 연말은 더더욱 복잡하다. 예산안은 끝났지만 아직 굵직한 것들이 남아 있다.

당장 패스트트랙(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으로 본회의에 부의된 ①선거법 ②검찰개혁법을 놓고 통과시키려는 4+1 협의체와 막으려는 한국당과 변혁의 전쟁이 살벌하다. ②은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백혜련 의원 안 Ⓑ공수처법 권은희 의원 안 Ⓒ검경수사권조정을 위한 검찰청법 Ⓓ검경수사권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등 4개 법안으로 이뤄져 있다. 

일단 10일을 끝으로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는 마무리됐다. 민주당은 미리 11일부터 시작되는 임시국회를 소집해놨다. 민주당이 한국당 패싱을 택하고 4+1 협의체로 갔기 때문에 임시국회를 연달아 소집해서 ①②과 함께 ③각종 민생 법안(청년기본법과 유치원 3법 등)을 본회의에 상정하고 통과시키기 위해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3당 원내대표 채널이 복원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4+1 협의체로 인해 예산안이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수싸움은 예산안 통과 때 확인된 156명을 봤을 때 4+1 공조 체제는 견고하다. 일단 4+1을 포괄하는 범 패스트트랙 공조 세력은 △민주당 129명 △바른미래당 당권파 9명(비례대표3+지역구6) △바른미래당 소속 나홀로 활동 의원 2명(박선숙 의원+이상돈 의원) △정의당 6명 △민주평화당 5명 △대안신당 8명 △민중당 1명 △무소속 6명(문 의장+손혜원 의원+이용주 의원+정인화 의원+김경진 의원+이용호 의원) 등 총 166명이다.

한국당과 변혁으로 이뤄진 패스트트랙 반대 세력은 △한국당 108명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와 변혁 15명 △우리공화당 2명 △무소속 4명(이언주 의원+이정현 의원+서청원 의원+강길부 의원) 등 총 129명이다. 

지난 11월29일 나경원 전 한국당 원내대표가 주호영 의원의 아이디어를 받아 199개 안건에 무더기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작전은 패스트트랙 법안 자체를 상정하지 못 하게 하는 묘수였지만 민주당이 본회의를 열지 않아 저지됐다. 임시국회 정국에서는 필리버스터 자체가 별로 실효적이지 않다. 일단 본회의 개의권과 사회권을 갖고 있는 문 의장이 민주당 출신인데다 국회법에 따라 쪼개기 임시국회를 연달아 개최하면 필리버스터는 무력화되고 바로 표결이 진행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 의장이 예산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강하게 항의하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과 오신환 바른미래당 변혁 원내대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결국 한국당 입장에서는 여론전에 기댈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의원직 총사퇴나 장외투쟁 말고는 선택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11일 0시50분 본회의장 앞에서 긴급 입장문을 발표하고 “의회주의가 파괴되었고 법치가 무너졌다. 국민 세금은 도둑질 당했다”면서 “국민의 혈세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통과를 위한 정치적 뒷거래의 떡고물로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 저들은 선거법과 공수처법마저 며칠 안으로 날치기 강행 처리하려 할 것”이라며 “가짜 검찰개혁과 가짜 정치개혁을 주고받는 대국민 사기극을 자행할 것이다. 좌파독재의 완성을 위한 의회 쿠데타가 임박했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릴 좌파독재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나와 우리 당은 결사항전의 각오로 맞서 싸워나가겠다”고 결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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