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63] ‘노무현’ 살아있다면 ·· 민주당 혼냈을 것
[선거제도 개편63] ‘노무현’ 살아있다면 ·· 민주당 혼냈을 것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9.03.15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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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정치만 극복할 수 있다면
분권형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노무현의 이원집정부제와 대연정
도농복합형과 독일식 모두 찬성
현재 민주당은 다 반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03년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총 273석)에 불과했다. 그때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133석으로 참여 정부를 사사건건 공격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282~291)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야당 지도자들을 부지런히 만났지만 쉽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처음부터 나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완연했다. 한나라당은 대북송금특검법안을 단독 처리했고 김두관 장관(행정자치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 윤성식 감사원장 인준을 부결시켰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만 열리면 차례로 나서서 대통령을 인신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국회의원 총선은 자꾸 다가오는데 여소야대에서 벗어날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 연속 패하고서도 확고한 지지율 1위를 유지했다. 총선에서 지고 나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해야 할지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결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강구했다. (사진=노무현 재단)

지금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128석으로 원내 1당이지만 여소야대 정국이고 113석의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강경 야당론을 표방하고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2일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김정은 수석대변인” 파동을 일으켰다. 

민주당이 야당이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한국당 못지 않게 대여 공세에 혈안이 돼 있었다. 한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야당이 되면 집권 여당을 맹공하게 된다. 무조건 반대하고 증오심을 키우면서 망하길 바란다. 그래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작년 12월15일 단식을 마무리하면서 “한국 정치의 악마가 민주당도 한국당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의 악마는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드는 지긋지긋한 대결 정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는 길은 그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 모두가 사는 길이다. 정책과 의견대로 국민께 평가받고 지지받고 이것을 토대로 토론하고 합의하는 생산적인 정치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무조건 발목잡는 한국식 야당 관행을 만들었고 여기서는 성인군자가 집권해도 성공하기 어렵다. 이정미 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연동형으로 국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사진=노무현 재단)
2003년 2월 16대 대통령 취임식을 치른 노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 전 대통령은 일찌감치 이런 지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영호남 지역으로 양분된 한국 정치 풍토를 바꾸고자 민주당 소속으로 영남 지역 출마를 감행했다.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는 그의 행보는 “바보 정신”으로 불렸고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사상 최초 정치인 팬카페(노무현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가 생길 정도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 그런 한국 정치를 바꾸고 싶어 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은 분당됐고 열린우리당이 탄생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1년도 안 남은 17대 총선 전망은 암울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미 집권 초반에 한나라당과 타협의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걸 체감했고 그런만큼 여소야대가 되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결 정치를 전환할 아이디어를 구상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총선 결과 여소야대가 펼쳐지면 국회에 국무총리 추천권을 부여하려고 했다. 국회에서 다수 연합이 총리를 추천하고 그 총리는 내각을 통솔하게 된다. 프랑스식 동거 정부와 책임 총리 모델이었다. 내치는 총리가 맡고 외치는 대통령이 맡는 이원집정부제인 것이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었다.

“독일식 국회의원 선거제도 또는 중대선거구제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을 조건으로 하려 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정치를 지역 구도가 아닌 정책 구도로 재편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 전 대통령의 대결 정치 극복 시도는 끝내 실패했다. (사진=노무현 재단)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초부터 야당에 이런 제안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년 6.13 지방선거 직전까지 형성됐던 개헌 정국에서 한국당이 주장했던 게 이원집정부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 이원집정부제 모델을 야당에 인센티브로 제공하려고 했지만 2018년의 민주당은 한국당이 분권형 개헌을 요구했음에도 대통령제를 고수했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뒀고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나누는 분권형 개헌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직후 당권 선거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에 야당이 동의해주면 선거제도 개혁에 나설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이해찬 대표는 2018년 8월9일 방송된 KBS <최강욱의 최강시사>에서 “야당이 정부와 여당의 안(개헌 권력구조)에 동의하면 저희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당했지만 되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역풍을 맞았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152석(총 299석)을 얻어 압승했다. 여대야소 정국이 펼쳐졌지만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의 대결 정치 극복 플랜은 어그러졌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어 버렸다. 협상을 할 기회가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총선 1년 만에 치른 2005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면서 여대야소 국회가 여소야대로 뒤집어졌다.”

다시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대제안을 했다. 한나라당에 대연정 카드를 내민 것이다. 

당시에는 ‘8인 회의’라고 이해찬 총리,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문재인 민정수석 등 당정청 주요 인사가 총리공관에서 회동했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6월 8인 회의에 참석해서 선거제도 개혁을 전제로 한 대연정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다 반대했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두 달 후 방송에 나가 대국민 공식 제안을 해버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치적으로 고뇌를 많이 했던 노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전략은 실패했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한나라당도 시큰둥했다. 노 전 대통령의 당내 세력 기반도 급격히 약화됐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을 해서라도 선거제도를 바꾸고자 했다. 

“어떤 문제는 적절한 시점이 되어 저절로 고쳐지기도 한다. 잠시 덮어 두었다가 적당한 시기에 전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공론을 일으키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이 있다. 선거제도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작년 연말 예산 정국에서 예산안과 선거제도 개혁을 연계해서 처리하자고 양당에 촉구했다. 하지만 평소 그렇게 상호 저주를 퍼붓던 양당은 매우 상이한 예산 철학을 갖고 있음에도 3당을 배제하고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도농복합형 선거제를 고수해서 5당 선거제도 개혁 합의문 원안을 마련했음에도 타결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선거제도 정국은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의 패스트트랙(지정하고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이 코앞에 와 있다. 패스트트랙에 올릴 단일안을 두고 민주당과 3당이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100% 연동형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300석 기준 정당 득표율 10%를 얻으면 30석을 확보해줘야 한다는 것이 3당의 주장이고 그 절반인 15석만 주자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3당의 100% 연동형과 민주당의 준연동 사이에서 단일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연동형을 도입하려면 분권형 개헌 논의를 동시에 해야 한다면서 선거제도 협상 테이블 밖에 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대도시에서 한 선거구에 여러 명을 뽑고 작은 도시와 농촌에서는 지금처럼 하나만 뽑는 도농복합 선거구제라도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차선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100% 연동형을 골자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이 1대 1이다. 

그러니까 노 전 대통령은 대결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분권형 개헌 △도농복합형 △독일식 선거제도 등 뭐든 적극적으로 고민했고 되려 야당들과 치열하게 협상해서 관철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 지도부는 노 전 대통령 때보다 정치적 여건이 훨씬 유리해졌음에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도입할 의욕이 없다.  

거대 정당으로서 자신이 속한 정치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넘어 한국 정치 전체를 걱정한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민주당은 정반대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모두 1987년 6월 항쟁 이후 1노(노태우)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금도 그때 만든 틀이 그대로다. 결선투표가 없는 단순다수제 대통령 선거, 역시 결선투표가 없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와 빈약한 비례대표 의석, 그리고 영호남을 축으로 하는 지역 대결 구도. 이 모두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개선된 것이라고는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 지지율로 나누기 위해 도입한 1인2표제 하나 뿐이다. 그것도 국회가 만든 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덕분에 겨우 도입할 수 있었다. 20년 넘게 우리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 구조 속에서 경쟁하고 대립해왔다.” 

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 걸린 노 전 대통령의 사진.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 걸린 노 전 대통령의 사진.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 전 대통령의 바보 정신이 발현된 걸까? 그게 아니다. 대결 정치는 모두에게 손해다. 집권 여당을 발목잡는 것에 혈안이 돼 있는 강성 야당이 존재한다면 그 누가 집권해도 성공하기 어렵다. 

“선거의 승패도 국회에서 벌어지는 정당 간의 대립도 모두 지역 대결 구도를 벗어나지 못 했다. 모든 전문가와 언론과 국민들이 이것을 질타하면서 정책 대결을 주문하지만 소용이 없다. 현행 제도를 고수하는 한 앞으로도 소용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 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가 발전하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예가 없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제이다.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는 모두 최종적으로는 정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정책 개발보다는 다른 지역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선거운동 방법이 된다. 정책의 차이가 감정 싸움으로 번지고 감정 싸움은 몸싸움으로 전환된다. 모든 정당에서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발붙이기 어렵다. 국회의원을 대폭 물갈이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경험한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 문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고 밝혔는데 현재 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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