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본회의 통과
공수처법 상정 직후 전원위원회 돌입
한국당의 저항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균열내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마침내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조금이라도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됐다. 한국 정치는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1등만 당선되고 2등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로 인해 서로 죽고 죽이는 대결 정치를 32년간 이어왔다. 이제는 전체 의석수에 정당 득표율이 영향을 미치는 선거제도의 첫 발을 뗐고 그런 만큼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 

27일 17시47분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 선거법 개정안이 재석 167인 중 찬성 156인, 반대 10인, 기권 1인으로 가결됐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선거법이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선거법과 세트로 처리 절차를 밟아왔던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은 19시20분 본회의에 상정됐고 자유한국당은 다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에 돌입하기 전에 다른 카드를 꺼냈다. 미리 국회법상 전원위원회 개회 요구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에 본회의는 정회됐다. 

전원위원회는 긴급한 안건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직전 직후에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의 동의로 요구서가 제출되면 성립되는 일종의 긴급 회의체다. 과거 이라크 전쟁 국군 파병 동의안을 놓고 2003년 3월28~29일, 2004년 12월9일에 소집된 전례가 있다.

어찌됐든 한국 정치 역사상 최초로 연동형의 기본 원칙이 적용되는 선거법이 통과됐는데 현행 지역구 253석 대 비례대표 47석 중 유권자의 정당 투표 결과가 정당의 전체 의석수에 영향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이 지역구 의석을 독점하고 47석에 대해서도 별도의 정당 득표율로 거의 모든 의석을 싹쓸이 하는 구조였다. 

바뀐 선거법은 △현행처럼 253대 47 △비례대표 의석 47석 중 17석은 기존의 병립형대로 배분하고 30석에는 연동률 50% 도입해서 배분 △투표권 만 18세 하향 등이 골자다. 

한국당은 2018년 비박계(박근혜 전 대통령) 김성태 전 원내대표 체제 때 비례성 강화의 선거법 개정에 어느정도 공감대를 보였으나 연말부터 나경원 전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5당(더불어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당권파·민주평화당·정의당) 합의문을 발표한 것 빼고는 선거법 개정 자체에 결사 반대로 돌아섰다. 그래서 2019년 4월말 패스트트랙 정국(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 때도 물리적으로 막아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한국당을 뺀 4당은 선거법과 검찰개혁법(공수처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에 성공했고 가을에 들어서는 330일의 거치 기간도 단축시켜서(정치개혁특별위원회 조기 의결) 본회의에 부의시켰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2020년도 예산안 및 각종 민생 법안들과 묶여서 본회의에 올라가게 된 시점이 12월 초부터였다면 한국당은 이때부터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총력 투쟁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황교안 대표의 단식 선언 △국회 경내까지 파고든 장외 투쟁 △뭉텅이 필리버스터 전략 △예산 부수법안 수정안 한 꺼번에 제출 △임시국회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한 필리버스터 신청 △선거법 통과를 대비한 비례 한국당 띄우기 등 모든 수단이 총동원됐다.

이날 난장판이 된 본회의장 의장석과 단상.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선거법은 본회의에 상정됐고 필리버스터는 지난 24일 밤 시작됐다가 26일 자정 0시를 기점으로 강제 종료됐다. 임시국회 회기를 쪼개서 짧게 개최하는 방식으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 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당의 실력행사는 시간끌기 외에 실효적이지 않았다. 

막판 민주당이 거대 정당의 기득권을 최대화하기 위해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대안신당·정의당·민주평화당)에 △225대 75 →250대 50 조정 △캡 25석~30석 적용(연동형 비례 의석 제한) △석패율제 삭제 등을 강요하면서 한국당 패싱 전선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3+1 단위(바른미래당 당권파·대안신당·정의당·민주평화당)의 큰 결심이 공조 체제를 유지시켰다. 

한국당은 27일 오후부터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작전을 짠 뒤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속기사와 발언대가 있는 단상을 둘러싸는 것은 물론 의장석으로 향하는 통로를 막아섰다. 언제까지 한국당의 점거로 본회의 개의를 미룰 수 없던 터라 문희상 국회의장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했고 주승용 부의장 등 의장단은 국회 직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한국당의 스크럼을 뚫고 의장석으로 갔다. 

문 의장은 의장석에서 의사진행을 밀어붙였고 국회 직원들의 엄호를 받긴 했지만 최대한 가깝게 붙은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 등은 1m 미만의 거리에서 문 의장의 오른쪽 귀에 대고 각종 항의성 메시지를 고성으로 쏟아냈다. 문 의장은 직접 말로 질서유지권을 재차 발동했고 심 원내대표는 직원들에 의해 단상 아래로 끌어내려졌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문 의장은 선거법 표결 방식(기명과 무기명으로 투표장 표결)에 대한 안건들을 모두 표결에 붙였고 그 결과 다 부결됐다. 직후 문 의장은 원래대로 기명 전자 투표 방식으로 선거법 표결을 진행했고 마침내 의사봉 방망이는 세 번 두들겨졌고 가결이 선포됐다.

(사진=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한국당은 법적으로 헌법소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천명했고 무엇보다 비례 한국당 창당 작업에 돌입했다. 비례 한국당을 통해서 연동형 30석마저도 최대한 차지하겠다는 전략을 공식화한지 오래다.

그동안 민주당과 한국당의 전신은 1등 아니면 2등을 차지했고 2등은 1등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정치적 에너지를 올인했다. 1등이 대통령 선거까지 승리했다면(여소야대가 아닌) 2등의 매서운 공격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청와대를 무조건 옹호하기 마련이었다. 민식이법(어린이 교통안전 강화) 등 민생 입법들은 매번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뒷전일 수밖에 없다. 쟁점 이슈 한 건이 부각되면 그걸 토대로 야당은 여당을 맹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국회 선진화법 체제가 되어 폭력 국회는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적대적 정치 문화는 그대로여서 최악의 무능 국회가 더욱더 악화되어 펼쳐졌다. 

대통령제 자체가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를 본령으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야당은 매번 비생산적으로 국회를 마비시킬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나 한국당이나 여야 상황이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1등 싸움에 목숨을 걸게 하고 그걸 부추긴다.

예컨대 작년 지방선거 결과(민주당이 17개 광역단체 중 14개 석권 및 수도권 광역의회 의석률 95% 장악)처럼 특정 정당이 압도적인 1등을 가져갈 수 있도록 정당 득표율을 무용지물(한국당은 당시 수도권 광역의회 선거에서 20% 넘게 정당 득표율을 얻었음에도 10석 미만 당선)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2018년 초부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 분위기를 타고 지지율 80%를 구가하면서 지방선거 완승을 가져갔다. 이것은 바꿔 말해 한국당도 과거에 선거에서 독식했던 적이 자주 있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분위기만 타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선거법이 거대 양당의 독식으로 인한 대결 정치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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