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㊿] 문재인이 지켜본 ‘노무현의 의지’
[선거제도 개편㊿] 문재인이 지켜본 ‘노무현의 의지’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9.01.28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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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반대했던 대연정 제안을 했던 노무현 대통령
그런 정치적 고뇌를 지켜본 문재인 민정수석
현재 대통령으로서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
3당이 문 대통령의 역할을 촉구하는 이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005년 7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제1야당인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그때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을 통해 “참여정부에서 가장 아팠던 일(특별판 309쪽)”이라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지역 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란 전제가 달려있긴 했지만 한나라당과 연정하고 한나라당에게 내각 구성 권한을 넘겨줄 수도 있다는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은 탄핵 반대 촛불을 거쳐 열린우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 준 우리 측 지지자들을 경악시켰다”고 묘사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의 모든 참모들도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반대했었고 그런만큼 “(노 전) 대통령의 진정성을 말하고 옹호하려 나섰지만 감당이 되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도 설득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에 뜻을 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05년 매주 금요일 저녁 총리 공관에서 당정청 핵심 인사 ‘8인 회의’가 열렸었는데 노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예고없이 참석해서 선거제도 개혁을 전제로 한 대연정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과 공조하면 과반 이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만큼 핵심 인사들도 다 반대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02년 12월26일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당직자 연수회에서 이미 “지역 대결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무엇이든 양보할 생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래 전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모든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2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지역 구도를 이대로 두고는 우리 정치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년 총선부터는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해서 선거법을 개정해주기 바란다. 이러한 내 제안이 내년 17대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나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 연합에게 내각 구성권을 이양하겠다.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을 내놓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어 “분권적 대통령제에 걸맞는 일이기도 하다. 헌법에 배치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국무총리 제청을 받아 국무위원을 임명하는 현행 제도 아래서 제청권을 존중하면 가능하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충심으로 드리는 간곡한 제안이다. 받아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문 대통령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 전 대통령의 소신은 2005년 7월28일 전격적으로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하며 공식화됐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바로 옆에서 그 당시 상황을 지켜봤고 이렇게 서술했다.

“정치권은 노 대통령의 거듭된 선거제도 개혁 요구에 아무 답이 없었다. 시민사회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옳은 말이자 필요한 일이라고 동의했지만 별 노력을 기울여주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서울의 시민사회 진영은 지역 구도 타파나 지방화, 분권화, 국가균형발전 같은 과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옳다고 동의했지만 절실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우선순위가 있는 문제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양극화 해소가 시급한 마당에 대통령이 지역 구도 타파 같은 우선순위가 덜한 문제에 너무 매몰돼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우리 진보개혁 진영의 현주소였다.”

사실 1998년 8월15일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초로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20년 넘도록 선거제도 개혁은 양당의 소극성으로 요원했었다.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이래로 민주당은 2008년~2017년 보수 정권 시대 때 각종 선거에서 쪽박을 차던 암흑기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독일식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과정을 밟았다.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 득표율로 확보 의석수를 픽스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 모델로 권고했고 민주당은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식 축사를 통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언했다. (캡처사진=MBC)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식 축사를 통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언했다. (캡처사진=MBC)

하지만 작년 개헌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에 국민 여론(대통령제 선호)을 명분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 주요 민주당 인사들은 2018년 8월 전당대회 시즌 때부터 최근까지 △야당이 대통령제 개헌에 동의해줘야 선거제도 논의 가능 △의원정수 증원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 부각 △다수당은 비례대표 의석 확보 어려움 △민주당식 연동형 주장 등을 일삼으면서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으로 변모했다.   

2018년 6.13 지방선거 직전 직후 민주당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힘입어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80% 대 전성기를 맞았고 50% 득표율로 90% 의석을 싹쓸이 하는 등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현행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고수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연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꿈을 대신 실현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25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회동한 자리에서 “1월 말까지 처리하기로 원내대표들이 합의했는데 1주일 밖에 남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 한국당은 보이콧을 할 게 아니라 산적한 현안과 선거제도 처리를 위해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심 의원은 선거제도 협상 정국이 절정에 다다른 만큼 △정개특위 소소위 가동 △5당 지도부의 정치 협상 병행 등 탑다운 의지를 드러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틈날 때마다 링컨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문 대통령의 의지를 주문하고 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 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1865년 ‘노예 해방’을 선언했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반대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협박·뇌물 등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했다. 

정 대표는 문 대통령이 나서서 민주당을 이끌면 한국당이 움직일 수 있고 선거제도 개혁 완수에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달 도출된 5당 원내대표 합의문 6항을 보면 선거제도 개혁 법안을 통과시킨 직후 원포인트 개헌 논의에 나서기로 돼 있다. 보수의 암흑기인 만큼 집권 가능성이 희박한 한국당 입장에서 분권형 개헌을 원할 수밖에 없고 결국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한국당 유인책으로 개헌이 제기되고 있다.  

2017년 5월19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와 회동했는데 여기서 “선거구제 개편이 제대로만 된다면 꼭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할 필요는 없지 않나. 다른 권력구조도 선택 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당시 회동에 참석했던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분권형 대통령제에 소극적이었는데 오늘은 문 대통령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증언했다. 

시민사회와 원내외 7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민중당·노동당·녹색당·우리미래)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공조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설명했듯이 그때는 노 전 대통령만 의지를 피력했지 외부 상황은 전혀 선거제도 개혁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정국은 △3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의 사활 △진보시민사회 진영의 적극성 △민주당의 공약과 발언들 △한국당 전임 지도부(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의지 표현 등 그 어느 때보다 선거제도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이 형성돼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재작년 5당 원내대표 회동 때의 발언 외에는 국회 합의만 강조하고 있지 그 어떤 적극성도 보이지 않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작년 연말 국회에서 단식할 때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한병도 전 정무수석이 방문해서 문 대통령의 원론적인 의사만 표현했지 5당 합의를 타결하기 적극적인 의지나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한병도 전 정무수석은 단식 중이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찾아왔다. (사진=박효영 기자)

한 전 수석은 12월12일 국회에서 두 대표를 만난 직후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선거제도 관련된 말씀을 많이 하는데 이미 문 대통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비례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다. 대통령 당선되기 전에도 말씀하셨고 2015년에도 객관적으로 선관위에서 안을 발표했는데 그렇게 합의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긍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말씀을 이미 전에 했다. 선거제도가 저희도 안타까운 것은 사실 여야가 모여서 차이를 극복하고 합의의 산물로 나오는 것은 국회의 영역이다. 뭔가 의견을 조율해서 빨리 합의안이 (만들어지고) 국민들이 생각하는 좋은 제도가 반영된다면 대통령께서도 만약 좋은 안이라고 생각된다면 얼마든지 국민을 설득할 의사가 있지 않겠는가.”

즉 3당은 국회에서 양당의 핑퐁 게임으로 합의가 도저히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문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는데 한 수석은 이미 충분히 문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고 여야의 합의사항이라 청와대가 개입하기에 부담스럽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7월2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렇게 강조했다. 

“대연정 말하니까. 이것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대연정 보다는 선거제도 개혁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되니까.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꼭 이 선거제도는 고치고 싶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이건 꼭 하고 싶다. 그런 뜻을 말씀드린 것이다. 그래서 대연정 제안은 소위 말하는 반대급부의 내용이고 진정으로 제안한 것은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다.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자. 이 제안이다. 그걸 중심에 놓고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문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역사적 기회를 맞아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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